연이어 터진 집안의 불행
남편이 지방으로 발령 받아 내려가면서 서울집을 전세 내주고 받은 전세금을 주식에 투자하였는데 그만 모두 날려 버려 서울에 올라 왔을 때는 부득이 은행 대출을 받아 월세로 방을 마련하여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남편은 재기하려고 사채 빚까지 끌어다가 회사내의 주택 조합원에 가입하여 투자를 했는데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사업하는 시동생의 보증을 서준게 잘못되어 그나마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는 내집 아파트가 가압류 상태에 놓이게 되버렸습니다. 이를 해지하고 생활고를 덜기 위하여 시작한 과외수업은 새벽 1∼2시까지 해야만 했습니다. 빚을 갚아 나가고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기 시작할 때 나는 나름대로 미래를 설계하며 둘째 아이를 임신하여 행복한 내일을 그려보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늘은 여전히 나에게 그렇게 관대하지가 못했습니다. 94년 여름, 임신 4개월째 접어들던 어느날, 아침부터 몸에 열이 나고 저녁 내내 견딜 수 없는 진통을 겪고는 한밤중에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에 입원해서는 꼬박 이틀 밤을 사경을 헤메다가 결국은 아이를 잃고나서 정신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패혈증세가 있어 보름간을 입원하여 치료받고 난 후에야 퇴원하였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하혈을 하여 병원에 다시 입원했고, 재수술을 받았습니다. 퇴원을 했지만 아직 회복이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다시금 삶의 현장속에서 이를 물고 힘겨운 삶을 버텨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던중, 1995년 5월 7일 , 시아버지 병문안을 다녀오던 길에 새벽녁에 서울역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질주하던 버스가 도로변에 서 있던 나를 덮쳐 나는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었습니다. 몇 차례나 의식을 잃었다 깨었다를 되풀이 하는 가운데 흰 옷을 입은 한무리의 사람들이 나를 잡으로 왔습니다. 완강하게 이를 뿌리치고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습니다. 진단 결과는 뇌진탕, 혈흉, 기흉, 늑골 골절 6개 등 열두가지나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나는 5개월 동안 다시 병원 생활을 했야 했고 2개월 동안은 꼼짝도 못하고 대소변도 받아내야만 했습니다. ‘도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이렇게 많아서 이토록 큰 시련을 겪어야 하는가?’ 하는 좌절감에 나는 몹시도 울었습니다. 쉽사리좌절하지 않던 나였지만, 집안살림은 물론 육체까지 망가질 대로 망가지다 보니 삶에 대한 절망만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 태을주를 통해 모든 것을 극복하고..
몇 달이 지나, 절뚝거리며 어느 정도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을 무렵, 전송배, 김인숙 도우님이 병문안을 와서 신유를 해 주었는데 아직 태을주가 뭔지 신유가 뭔지 아무것도 모를 때였지만 무언가 개운한 느낌이 들면서 시원함을 느겼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일심으로 수행에 동참하다보니 몸의 회복은 말할 것도 없고 차츰 정신적 건강도 회복해 가면서 말로 형용하기 조차 힘들 정도의 많은 체험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행을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는 병기운이 빠져 나가는지 얼굴이 몹시 가렵기도 했고, 평소에는 맡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의 몸에서 나는 탁기운으로 인한 냄새(악취)를 맡기도 했습니다. 수행하면서 육체적·정신적 고가 하나씩 풀어지면서 찾아오는 평온함과 한없이 맑음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평화였고 상쾌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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