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비밀을 밝히는 우주론
지난 해 봄 집앞 화단을 보니까 접시꽃과 백목련이 피었어요. 푸릇푸릇 새싹이 돋아나더니 예쁜 꽃이 핀 거예요. 여름이 되니까 한껏 푸르름을 자랑하더라구요. 그러더니 또 얼마 뒤 가을에는 꽃 떨어진 자리에서 열매가 달리더니, 겨울이 되니까 잎도 열매도 다떨어지고 볼품없는 모습을 하고 있더라고요.
자연의 변화를 살펴보면, 대자연의 시간 질서라는 게 참으로 어김이 없고 냉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알든 모르든 대자연 질서는 정해진 틀이 있어요. 저는 해마다 봄에 돋아난 새싹이 가을에 서리가 내리치면 하룻밤에 스러져버리는 걸 보고, 참으로 무상하다는 걸 느낍니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은 우주 변화의 질서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우주변화의 원리라고 하는데, 바로 이것이 바로 증산도 우주론의 핵심입니다.
그러면 이 시간의 비밀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그 비밀을 푸는 열쇠를 동양에서는 역학(易學)이라고 합니다. 역학이라는 말은 누구든지 한번쯤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다함께 도전 2편 20장에 있는 증산 상제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늘이 이치(理致)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있을 수 없느니라.
천지개벽(天地開闢)도 음양이 사시(四時)로 순환하는
이치를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
천지의 모든 이치가 역(易)에 들어 있느니라. (증산도 도전 2:20:3∼5)
증산 상제님께서는 “하늘이 이치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 천지의 모든 이치가 역에 들어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역(易)’이라는 글자를 파자(破字) 해보면, 날 일(日)과 달 월(月)로 되어 있습니다.
이 일월, 즉 해와 달은 음과 양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물이죠. 우주는 크게 보면 두 가지 기운뿐입니다. 음 아니면 양입니다. 아주 쉽습니다. 여러분, 지금 앉아계신 자리에서 주변을 둘러보시죠. 남자, 아니면 여자 뿐이죠? 한 몸에 남녀가 같이 있는 분은 없죠. 이렇게 사람도 음과 양으로 되어 있어요. 초목도, 수컷과 암컷, 미물곤충도 음 아니면 양뿐 입니다.
음양의 이치로 둥굴어가는 세상
우주가 음양으로 펼쳐져 있고, 또 음양으로 둥글어 간다고 얘기할 수 있는데 예를 간단히 들어보겠습니다.
소[丑]와 말[午]을 한번 생각해보죠. 하나는 음이고, 하나는 양입니다. 과연 어떤 게 양이고 어떤 게 음이겠습니까? 소가 양일까요? 말이 양일까요?
양의 성질은 동(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이 양에 해당합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말의 속성에 비유해서 이런 얘기를 하죠.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여자를 말괄량이라고 하고, 또 풀어놓은 망아지 같다는 얘기도 하죠.
그런데 소라는 것은 음입니다. 정적이고 유순하죠. 조그만 꼬마가 소를 끌고 가도 소는 그저 느릿느릿 따라갑니다. 발굽을 봐도 말은 양적인 동물이라 하나인 통굽으로 되어 있고, 소는 음에 배속되는 동물이라 소 발굽은 두 개로 갈라져 있습니다.
1 3 5 7 9 홀수는 양의 수(數)이고, 2 4 6 8 10 짝수는 짝이 있어 안정이 되어있는 음의 수입니다. 이런 음양의 이치로 양인 말은 발굽도 홀수인 하나로 되어 있고, 음인 소는 발굽도 짝수인 두 개로 되어 있는 겁니다. 이렇게 대자연 삼라만상에는 모두 음과 양의 이치가 들어 있습니다.
종도사님께서 일전에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옛날 시골에 어떤 산모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산모가 진통은 극심한데 애가 뱃속에서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사경을 헤매는데, 남편이 줄달음질을 쳐서 꼭두새벽에 한의사를 찾아 갔습니다. 지금 애가 안나와서 잘못하면 우리 처가 죽게 생겼으니, 애 잘나오는 약을 빨리 지어달라고 난리가 났어요. 그런데 그 한의사가 들어보니, 산모가 곧 죽을 것 같은 화급한 상황이니까, 약을 안 지어주고 이런 처방을 내렸어요.
약 지어서 다려 먹을 시간도 없으니, 지금 얼른 집에 가서 이슬을 한 바가지 훑어서 산모에게 먹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다시 집으로 달려가서 이슬을 훑어서 산모에게 한 바가지 먹였는데, 애가 갑자기 쑥~ 나왔어요. 그래서 그 소문이 동네방네 쭉 퍼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이웃 마을의 산모도 애를 나으려고 하는데 애가 안 나오는 겁니다. 그러자 올커니 하고, 그 소문을 들은 산모의 남편이 이슬을 많이 받아서 산모에게 먹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산모의 아이는 밑으로 빠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이가 위쪽으로 올려붙어 결국은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고 말았어요.
왜 그럴까요? 첫 번째 산모는 아침이슬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산모에게는 한참 진통을 할 때가 마침 저녁 무렵이어서 저녁이슬을 먹였던 겁니다. 바로 그 저녁이슬에 문제가 있었던 겁니다.
아침에는 양의 기운이 동합니다. 양기를 받은 아침이슬은 흩어지는 양의 기운을 담고 있죠. 하지만 저녁 때는 이슬이 뭉치기 시작하는 때니까, 저녁이슬은 모여드는 음의 기운을 담고 있어요. 그래서 아침이슬을 먹은 산모는 그 양기를 받아들여 아이를 쑥 낳게 되었고, 저녁이슬을 받아 먹은 산모는 그 음기가 엉기어, 아이가 산모에 더 붙어버려 결국 출산을 못하고 죽게 된 겁니다. 바로 이런게 음양의 이치라는 거예요.
음양의 변화가 다시 넷으로 나눠져…
이렇게 우주는 음과 양으로 펼쳐져 있는데,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음양은 끊임없이 순환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경우는 직선적인 시간관을 가지고 있어요. 아주 오래전에 천지창조된 후, 종말과 심판이 있고, 그 이후에는 영원한 천국이 계속된다고 하잖아요. 이건 일종의 직선적인 시간관이죠. 여러분, 이것이 자연섭리에 부합될까요?
달이 지면 해가 뜨고, 해가 지면 달이 뜨잖아요? 이처럼 ‘대자연의 변화는 사이클이 있어요. 이것이 동양의 시간관입니다.
대자연의 변화란 직선적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음과 양이 서로 머리꼬리가 되어 순환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해 갑니다. 낮시간이 가장 긴 하지가 지나면 점점 밤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하고, 반대로 밤시간이 가장 긴 동지를 지나면 거꾸로 낮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음의 변화가 극에 이르면 양의 변화를 낳고, 또 양의 변화가 극에 이르면 다시 음의 변화를 낳는 것이죠. 그런 오묘한 변화의 이치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게 바로 태극(太極)입니다.
이렇게 우주에는 음양의 이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증산 상제님께서는 음양이 변하면서 또 사시(四時)로 순환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시로 순환하는 이치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이 뭐냐면, 바로 하루의 변화입니다.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이 있고, 양의 분열의 극에 점심이 있잖아요. 그리고 나서 음으로 기운이 가라앉는 저녁이 있고, 한밤중인 밤이 찾아오게 되죠. 하루하루의 음양변화는 아침, 점심, 저녁, 밤 이렇게 네마디로 변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이치가 지구의 1년의 변화로 확대되면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되는 겁니다. 바로 이 사시의 순환이 자연섭리의 표상입니다. 인간의 일생도 똑같습니다. 인생에도 봄이 있죠. 바로 목(木)처럼 약동하며 자라나는 유년기가 있고, 그리고 불[火]처럼 분열을 해서 걷잡기 어려운 시기인 청년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성장의 시기를 지나면 이제는 성숙의 시기로 들어가죠. 가을에 해당하는 중년기[金]를 맞이하면서 사람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자식을 보잖아요? 그리고 생을 수렴하는 과정에 들어가면서 겨울에 해당되는 노년기[水]를 맞습니다. 지난 한평생 생을 갈무리하면서 인생을 정리하는 시기죠. 이렇게 만물의 변화는 모두 네 마디의 주기를 가지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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