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저승에서 안주할 곳은 없다
자살은 고통으로 부터의 영원한 도피는 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한 두번쯤 자기 자신의 손에 의한 죽음, 이른바 자살을 생각한 일이 있을 것이다. 괴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은 자기를 비극의 최대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그와 같을 때, 죽음이라는 것이 지극히 용기 있는 행동으로 보이게 되고, 괴로운 경지에서 빠져나가는 유일한, 또한 최선의 방법이라고도 생각하게 마련인 것이다. 필자 자신도 그와 같은 생각을 했던 일이 있었다. 필자가 자살을, 혹은 동반 자살을 생각한 일은 여러 차례나 있었다. 괴로울 때, 역경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갈 수 없는 상태로 몰리고 말았을 때의 일이 었다. 특히 종전을 외지에서 맞은 필자 같은 이에게 있어서는 죽음 이외에 자기를 살리는 방법은 도저히 없다는 막다른 골목까지 몰리고만 일이 있었다.
먹고 싶어도 먹을게 없고, 먹을게 있으면 돈이 없었다. 항상 남을 지배하던 입장에 있던 사람이 피지배자의 입장에 놓였을 때, 자신에게 쏟아지는 눈초리는 온통 차갑고 적개심에 가득 차 있다. 숨을 쉬는 데도 주위의 눈치를 살피지 않으면 안되는 극히 냉엄한 상태로 몰렸을 때, 사람은 죽음, 즉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세상에는 죽음을 생각하면서 죽지 못하고 살아 가는 사람이 많이 있다. 필자가 알고 있는 어느 연예인은 몇번씩이나 죽음을 생각하고, 자살을 생각하고, 또한 죽음을 원하고 약을 먹고 자리에 눕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죽을 수 없었다.
예능인만이 아니다, 텔레비 방송국의 디렉터 중에도, 또한 출판사 편 집자 중에도, "더 이상 꾸려나갈 수 없으니, 아주 자살해버리고 말까 하고 생각한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몇 사람씩이나 있다.
죽는 용기, 사는 용기, 어느 쪽이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살아가는 길을 걷지 않으면 안된다.
최근의 경향으로 보면, 특히 두드러지는 게 자살자 가운데 는 육체 노동자보다도 정신 노동자의 수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여성도 있다. 정신적인 면에서 연약한 걸 이기지 못하는 여성도 많다. 특히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젊은 10대의 학생이 저지르는 자살인 것이다.
사람인 이상, 아무리 괴로워도 살아가는 길을 가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사는 괴로움에서 도피하는 일이 스스로의 생명을 끊는 자살이라는 동기가 되고 있는 것 같으나, 자살이라는 수단이 과연 괴로움에서 영원히 도피하는 일에 이어지는 것일 런지?
필자는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죽음은 새로운 생명에의 출발이며, 하나의 죽음을 가지고 모든 것에 종지부가 찍힌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이 아닐런지?
현실의 괴로움 이상으로, 사후의 세계에도 괴롭고 무서운 일이 존재 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진지하게 포착했을 경우, 스스로 생명을 끊는다는 행위는 취할 수 없을 것이다.
자살자에 대한 크나 큰 분노
이번에 필자가 자살이라는 주제로 쓸 생각이 든 것은 심령적인 뜻도 물론 있으나, 그 밖에 필자의 몸 속에 있는 '분노의 피'가 '분노의 부르짖음'을 외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필자는 사생아라는 지극히 큰 핸디캡을 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더욱이, 어머니가 괼자를 유산시키 려 고 한 탓으로 다리 에 장해를 일으키고 있다.
불론 이와 같은 일이 무슨 일을 하긴 큰 장애가 되고 있다뜻은 아니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또는 일을 할 수 있다. 그 정도의 장애라고 하긴 해도, 역시 장애는 장애였다. 또한 청춘 시절을 중국 혁명에 몸 바쳐 온 15년 동안의 공백기간도 필자가 짊 어지고 있는 큰 핸디 캡 인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이다지 문제 삼지 않게 되었으나, 필자가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사생아에 대한 차별은 몹시 심했다.어렸을 때, 사생아라는 이유가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다. 학교에 가도 아이들로 부터, 또는 그들의 부모로 부터의 이중, 삼중의 시달림을 받았다. 하지만 필자는 이와 같은 괴롭힘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 사생아혼이라고 할만한 것을 만들어 갔다.
"질 게 뭐 야! "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두고 보자! "
그런 마음으로 필자는 살아 왔다.
이 책이 핸디캡을 지고 살아 온 괼자 자신의 인생을 쓰는게 아니므로 자세한 것은 여기서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스스로의 생명을 끊지 않으면 안될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에 비한다면, 사람에 따라서는 네 고통 따윈 문제도 안돼,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에게 있어서 60년을 사는 동안의 심신 양면의 크나 큰 핸디 캡은 나름대로 괴로운 것이 었었다.
괴로움 가운데, 필자는 자기 자신에게 지지 않고 살아 나가는 일을 항상 생각해 왔다. 근성이라고 할까, 지기 싫어하는 혼이라고 할까, 하여튼 그런 것으로 스스로를 버티고, 단련하고 살아 왔다.
언제든, 기회가 있으면 필자 자신의 이 60평생 간직하고 이루어 놓은 사생아혼이라는 것에 대하여 쓰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이것이 필자의 자살자에 대한 분노의 피인 것이다죽지 않고 사는, 죽지 않고 고통 속에서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어 가는 것으로 인생을 멋지게 만들어 가는 것으로 마음 가짐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죽음에서 살아난 이 만이 말할수 있는 체험담
다음에 소개하는 것은 자살에 실패한 사람의 체험이다. 쓰고 있는 동안에 필자는 몇 차례나 붓을 멈추고 그만 두려고 생각했다. 분명히 피 또는 그녀들에게는 자살을 하지 않으면 안될 원인이, 그리고 통기가 있었다. 하지만, 죽어 버리면 패배가 아닐런지?
자기 자신에게 지는, 살아가는 것에 지고만 결과가 된다. 사는 일에 진 사람이 저승인 사후의 세계에서 안주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안주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일은 자살에 실패한 사람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는 일이다. 자살 미수로 그쳤으니까 그래도 다행 한 일이다 반약 미 수가 아니었던들, 어떻게 되어 있을 것일까? 생각만 하여도 소름이 끼 친다.
여기서는 자살 미수자가 죽음을 택하기까지 쫓기고 쫓긴 갖가지 상태, 그리고 자살을 꽤하고 가사상태 속에서 얼핏 본 저승의 모습. 그리고 지금 되돌아 보고 자살이라는 수단이 과인 어떤 것이었는지를 독자 여러분이 다 같이생각해 준다면 다행이라고 여긴다.
살아 가는 일에 조금이라도 불안을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 강하게 산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면 더없이 다행한 일이다. 감히 자살에 실패한 사람의 체험을 여기에 묶은 것은 그와 같은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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