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북극성에서 왔다
-류시화 에세이 중에서-
나는 북극성에서 왔다.
어려서부터 나는 그렇게 믿었다.
누가 그것을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물론 학교에서 배운 것도 아니었다.
어느날 그냥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봄날의 밤이면 특히 그 별이 내 머리 위에서 빛나곤 했다.
그러면 알 수 없는 신비의 힘이 느껴졌다.
그 별은 '나의 별'이었다.
아주 어렸을 적에 나는 이런 시를 지은 적이 있다.
하늘에는 수없이 많은 별들
땅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
그래, 별들만큼 사람이 많은 것은
우리가 저마다 다른 별에서 왔기 때문이지
나는 내가 모르는 많은 사실들을 그 별에게서 얻었다. 때로 고요한 명상상태에 들어가 그 별과 교감하면
나는 시간을 초월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잠을 자면 곧잘 유체이탈을 해서 그 별에 가곤 했다.
또한 삶이 힘들고 고달플 때마다 그 별을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위안이었다. 미국에 있을 때도 그랬고
인도의 들판에서 잠들 때나, 또 일본의 뒷골목을 걸어갈 때도 그 별이 항상 나를 지켜봐 주었다. 그 별을
생각하면 어디서나 나는 편안했다.
나는 북극성에서 왔다.
북극성에서 온 사람들은 특히 시와 음악과 그림을 좋아한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지구'라는 이 독특한
별을 경험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는 결국 어떤 다른
별에서 지구에 여행을 온 여행자들이다. 우리 대부분이 잊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한 영적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었다.
"언제가 밤이고 언제가 낮인가? 밤과 낮을 구별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한 제자가 대답했다.
"멀리 서 있는 동물이 소인지 말인지 구분할 수 없을 때가 밤입니다."
스승은 "틀렸다'고 말했다. 다른 제자가 대답했다.
"멀리 서 있는 나무가 보리수인지 망고나무인지 구분할 수 없을 때가 밤입니다."
스승은 또 틀렸다고 했다. 제자들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밤과 낮을 구분합니까?"
스승이 말했다.
"그대들이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비록 깜깜한 밤속에 살고 있긴 하지만 우리 모두가 본래 여행자들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누구는 아득히 먼 별에서 왔고, 누구는 이 지구에서 수십 번의 생을 거듭하고 있으며, 누구는 또 이제 막
동물계에서 인간계로 넘어왔지만 모두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가 여행온 이
지구라는 별은 여러 가지 면에서 특별하다.
어떤 경로를 거쳐서 왔든지 일단 이곳에서 도착하면 우리는 이곳의 관습을 따라야 한다. 그것은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관습을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이 지구별에서는 인간의 육체를 하고 태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질계 차원의 이 지구에서 생존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선 부모를 선택해야 하고 어린
시절을 거쳐야 한다.
또 이 별의 언어를 배우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이 별은 모든 면에서 친절하다. 우리를 이 별에
적응시키기 위해 학교라는 것도 있고 다양한 교사들도 있다. 지식을 전해 주는 자도 있고 도덕을 가르치는
자도 있다.
그리고 이 별에서는 신발을 신고 다녀야 한다. 그것은 다른 별에선 없었던 일이다. 발이 갑갑하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지구별의 규칙에 따라 양말과 신발을 신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구두 만드는 일로 생계를
꾸려 나가는 사람도 생겼다. 빵 만드는 자도 있고 술 파는 자도 있다. 짧은 시간에 더욱 많은 것을 경험하도록
자동차를 만들어 파는 자도 있고, 외로운 비행기 조종사도 있다.
이 별에는 얼마나 다양한 인간들이 있는가! 상인이 있고 도둑이 있고 별 관측하는 자도 있고 기후를 재는 자도
있다. 그런가 하면 마술사와 부랑아들과 수도승들이 있다.
이 지구 여행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직업을 가져야 하고 결혼이라는 것도
하게 된다. 물론 독신 생활을 고집하는 괴팍한 여행자들도 있긴 하지만. 그리고 또 결혼을 통해 새로운 꼬마
여행자가 이 지구에 도착한다. 그런데 여행자는 갈수록 많아지고 직업을 얻기가 힘들어졌다. 말하자면 여행은
둘째치고 생존 그 자체가 힘들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차츰 우리는 우리가 여행자라는 사실을 잊고 생존 그
자체에 몰두하게 되었다. 생존의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더 많은 재산을 모으는 데 열중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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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마치 우리가 아프리카의 밀림 속으로 여행을 가는 것과 같다.
그 곳의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우리는 밀림 속 토인의 복장을 하고 그들의 언어를 습득한다.
토인들과 어울려서 창을 들고 괴성을 지르며 밀림 속을 뛰어다니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즐거운 일이다. 아름다운 원주민 여자와 결혼해서 자식도 낳는다. 그러면서 우리는 차츰 자신이
본래 아프리카 토인이 아니라 동양에서 간 여행자라는 사실을 잊는 것이다.
곧 여행이 끝나고 비행기표가 무효가 되기 전에 그곳을 떠냐야 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어떤 자는 추장이 되려고 권력 다툼을 벌이고, 더 많은 토지를 소유하려고 사기를 치며,
또 어떤 자는 보이지 않는 밀림의 신에 대해 학설을 만들어 다른 토인들 위해 군림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우리는 떠나게 되어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다. 이 지구별에서는 우리가 얻은 어떤 물질도,
어떤 명성도 영원한 것일 수 없도록 규칙이 정해져 있다. 또한 떠날 때는 그 모든 것을 놓고 빈 손으로 가야
한다. 가혹한 규칙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규칙은 규칙이다.
그리고 이 우주의 더욱 가혹한 규칙은, 만일 우리가 여행의 목적을 잊어 버리고 여행지에 집착한다면
그 집착이 사라질 때까지 언제까지나 다시 그 장소에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똑같은 일을 되풀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다시 또다시 태어나 똑같이 아프리카 토인들과 괴성을 지르며
줄달음질치는 흉내를 내야만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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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경험은 한 번만으로 족하다. 그것은 국민학교 과정을 마치지 못하면 계속해서 낙제를 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때 그 여행은 고통스러운 것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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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비가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왕자가 있었다. 그는 왕자다운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늘 문제를 일으켰다.
그래서 화가 난 왕은 어떤 방법을 써도 안되자 그를 바로잡기 위해서 궁정 밖으로 추방시켰다.
궁정을 떠난 왕자는 용서 따위는 구하지 않고서 거리의 술주정 꾼과 노름꾼, 창녀들과 어울려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일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서히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여러 해가 흘렀다. 왕은 늙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을 궁정으로 데려와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대신을 아들에게 보냈다.
첫번째 대신은 많은 수행원을 데리고 왕자가 있는 부랑아들의 집단으로 갔다.
그러나 왕자가 아예 대화를 거부했다.
그래서 두번째 대신은 왕자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서 마을로 들어가 먼저
그 부랑아 집단과 친해졌다. 그리고 그 자신이 자유를 즐기기 시작했다. 궁정 안에선 전혀
자유가 없었다. 궁정은 마치 감옥과 같았다. 그러나 부랑아들의 집단 속에서는 모두가 자유
로웠다. 아무도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대신은 자기가 그곳에 온 목적을
잊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으며 영원히 왕에게로 돌아가지 않았다.
왕은 무척 걱정이 되었다. 이제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는 세번째 대신을 선택했다. 이 대신은 지혜로웠기 때문에 떠나기 전에 석달간의 여유를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야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러 떠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왕이 물었다. "무엇을 준비하기 위해선가?"
그 대신이 대답했다. "내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왕의 허락을 받은 대신은 한 스승을 찾아갔다. 늘 깨어 있는 마음을 갖는 수행을 하기 위해서였다.
두번째 대신이 실패했던 것은 자기 자신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세번째 대신은
스승에게 말했다. "내가 내 자신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그래서 그는 그 스승 밑에서 자기 자신을 기억하는 수행을 석달간 계속 했다.
그 다음에 그는 왕자를 만나기 위해서 떠났다. 그는 두번째 대신과 똑같이 행동했다.
수행원도 거느리지 않고 평범한 농부의 복장을 하고서 마을로 들어간 그는 술주정뱅이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그들 집단과 하나가 되어 술을 마시는 흉내를 내었고 노름하는
흉내를 내었다. 심지어 한 창녀와 사랑에 빠지는 흉내까지 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흉내였다. 그는 절대로 자기 자신을 잊지 않았다.
그는 늘 스스로 이렇게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곳에 왔는가? 무엇을 위해서?"
그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지켜보았으며, 그리하여 마침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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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다른 별에서 이 지구별로 여행을 왔다.
그 제약을 잊기 위해 사람들은 많은 기구와 오락들을 만들었지만,
결국 우리가 무의식 중에서도 잊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어디선가 왔으며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 도중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을 일깨워 주기 위해 다른 별과는 달리 이 지구에는 종교라는 제도가 생겨났다.
종교란 결국 우리가 여행자라는 사실,
그리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자각하게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겠는가?
그러나 슬프게도 이 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제도라는 것을 좋아한다.
미지의 불안한 여행에 있어서 제도는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상에는 사람수 만큼 많은 종교가 존재하게 되고 종교 역시 다른 세속적이 것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심리적인 위안을 주면서 오히려 배타적인 믿음을 심어 주는 것이 되어 버렸다....
[류시화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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