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부터 친근했던 귀신
“그게 참 희한하지. 귀신을 봐도 무섭지가 않대요. 아마 신의 뜻이었던 게죠.”
퇴마사 김세환(58)씨는 38살이던 1987년에 귀신을 처음 봤다고 했다. 당시 한 중소기업의 기획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그의 눈앞에 불현듯 “회장의 아버지”를 자처하는 노신사가 나타난 것.
“지인에게 빌려준 700만원을 못 받고 죽었다고 하소연을 하기에 곧장 회장실로 뛰어가 확인해 봤죠. 거참, 신기하게도 실제 회장 부친이 죽기 전에 못 받은 빚이 700만원이라 합디다.”
동료들의 크고 작은 신상의 변화를 점치는 능력이 남달라 이미 ‘김도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그였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실제 귀신을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의 삶은 180도로 달라졌다. 계단을 걷다 무심코 앞 사람을 쳐다보면 발만 있고 몸의 형체가 없는 일이 부지기수. 이후 그는 영혼과의 만남, 그리고 대화를 즐기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샐러리맨으로 보낸 14년 세월이 수련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세상을 배우고 사람을 배웠으니 그만큼 귀신들의 여러 가지 사연을 잘 풀어 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멀쩡히 다니던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퇴마사로 나선 그였지만 가족의 반대는 없었다. 매사 그의 예측이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아내는 오히려 적극적인 후원자로 나섰다.
그는 혼령과 퇴마사의 치열한 결투가 벌어지는 영화 속 장면들이 퇴마사에 대한 오해를 키운다고 강조했다.
“그거 다 가짜요. 귀신의 본성도 사람인데 왜 싸워. 영혼이라는 게 결국 사람이 죽으면 마음이 이전돼 생기는 ‘마음의 집결체’예요.”
그는 그래서 퇴마라는 말 대신 ‘제마’라는 표현을 쓴다. 귀신을 쫓아내는 게 아니라 귀신을 통제하는 게 진짜 유능한 퇴마사의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퇴마사를 삐딱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굳이 설득할 생각은 없다”는 김씨는 “다만 사람들이 귀신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고 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사람에게 해가 되는 원한령, 복수령, 악령 이 세 가지 영혼의 활보는 최소한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이 일을 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제마란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것을 말합니다. 많은 이들에게 ‘내 마음을 잘 다스릴 때 귀신을 피할 수 있다’는 명제만은 꼭 전하고 싶습니다.”
■ 나는 기독교인이었다.
인터넷 무료 퇴마 상담가로 유명한 이승택(29)씨는 불과 5년 전만 해도 그저 공포감과 인간의 한계, 스릴을 느끼고 싶어 흉가체험을 하러 다니던 20대 젊은이였다. “귀신이 없다고 생각하고 흉가체험을 시작했다”는 이씨는 “모태신앙으로 청년모임 활동도 열심히 하던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다가 흉가체험을 하던 동호회 회원들이 접신으로 하반신 마비 등을 경험하는 모습을 보면서 퇴마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뭔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우연치 않게도 귀신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 능력을 개발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는 “퇴마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무속신앙과만 연관이 있는 게 아니다. 기독교나 천주교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귀신을 쫓는 행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통 받는 지인들을 보면서 유일신에 의존하기보다 자신의 능력을 키워 이들을 직접 돌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교회에 나가는 일을 과감히 포기하고 자기 수련을 강조하는 불교나 밀교 경전 연구에 매달린 것도 그래서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퇴마 상담을 전문적으로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하루 80~100통의 상담 전화가 걸려 왔을 때는 정말 그만두고 싶었어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더욱이 영혼의 괴롭힘 때문인지 여자친구가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주변 사람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상담 업무를 잠시 중단한 동안 신들림 현상인 빙의로 괴로워하며 그에게 상담을 받았던 환자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결국 생업인 연예매니지먼트회사 직원으로 일하면서 인터넷 퇴마 상담을 재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본격적인 인터넷 상담을 시작한 2004년부터 지금까지 맡은 상담 건수만 무려 1만 여건. 그는 건萬餠【??영과 대화하기 위한 연구까지 이뤄지고 있다”면서 “귀신의 존재 여부에 관해서는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저 역시 이전까지 전혀 믿지 못했는걸요. 그저 저는 남들보다 일찍 체험을 한 것이고 다른 분들은 경험하지 못한 것 뿐이죠. 과학으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의 모든 신념을 저버려야 하나요? 그건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종교를 모두 부정하는 것 아닌가요?”
■ 퇴마사는 나의 천직
김영기(44)씨는 퇴마사 일을 천직으로 여긴다. 어려서부터 초능력 등 초자연적인 현상에 관심이 많았던 까닭이다. “귀신이나 초능력 이야기를 들으면 심장이 뛰고 가슴이 설레곤 했다”는 김씨는 “항상 귀신과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 왔다”고 했다. 그 기회는 15년 전 머리가 셋인 신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찾아 왔다고.
“그 때부터 자연스럽게 귀신을 보고 대화하는 능력을 갖게 됐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가족력이 있었더군요.”
사연인즉 이렇다. 그가 태어나기 전인 6ㆍ25 한국전쟁 당시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 형제들이 염병(장티푸스)에 걸려 고생한 일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꿈속에서 신이 지어준 약을 먹고 실제로도 건강을 되찾았고 다른 식구들도 같은 방식으로 병을 고쳤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자신이 퇴마사의 길에 들어서게 된 계기를 제공한 15년 전의 그 신이 그의 아버지의 꿈에 나타난 동일한 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김씨는 고등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매가 혹시 외부의 부정적 시선에 상처받을까 싶어 서울 마포에 법당을 차려서 나와 산다. 그래도 이 일을 멈출 수 없는 것은 수없이 많은 귀신이 인간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고, 그 중엔 악한 귀신도 상당수라 누군가는 이들을 제압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안 된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자아에 대한 부정은 귀신을 불러들이는 주문과도 같습니다. 악한 귀신의 사주를 받으면 자살, 살인 등 어떤 행동을 할 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사연은 각각 다르지만 퇴마사들의 주장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빙의든, 정신질환이든 결국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내 마음에 있다는 것. 귀신의 존재 여부야 영원한 미스터리라지만 마음을 다스리는 게 최우선이라는 이들의 주장 만큼은 새겨들을 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