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고학자나 역사학자도, 언어학자도 아닙니다. 그 분야의 전문가는 더더욱 아닙니다.”
이 말처럼 저자는 오직 30년 동안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한국적 소재를 현대적 감각의 디자인으로 상품화하는 것에만 전념해온 디자이너다. 그러던 그는 전통문화를 연구하면서 모든 문화에는 뿌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뿌리를 찾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3661년 동안 아시아 전체를 통치했던 배달국과 단군조선 제국의 실체를 「태극편」, 「한글편」, 「역사편」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방대한 고증자료를 통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책을 만들었다.
1장 ‘태극은 한국인의 심볼’(「태극편」)에서는 한국의 상징인 태극의 의미와 태극 유물 및 한민족과 유사한 문화유물이 시베리아와 몽고를 포함한 알타이, 한반도, 일본 땅에서 발굴된 것을 비교하면서 그곳이 옛 동이족의 영토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2장 ‘한글은 단군이 만들었다’(「한글편」)에서는 한국, 일본, 인도, 몽고, 중국지역에 널리 퍼져있는 가림토 문자를 비교하면서 단군조선이 통치하던 광대한 영토를 확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단군조선은 신화가 아니다(「역사편」)에서는 「태극편」과 「한글편」을 바탕으로 한민족의 뿌리인 배달국과 단군조선의 역사를 밝히고 있다. 본 글에서는 한글날을 맞이하여 「한글편」을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세계 최초의 문자, 녹도 문자와 가림토 문자
최근 수많은 유물의 발굴을 통해 옛 동이족의 강역에서 중국의 황하 문명과는 완전히 다른 선진 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파장이 국내에서는 아직 크지 않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이집트에서는 상형문자,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설형문자가 사용된 것처럼 선진 문명의 척도라 볼 수 있는 고유문자를 사용한 증거를 명쾌하게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민족의 경우 문자다운 문자를 사용하지 못하다가 삼국시대에 한자가 겨우 도입되었으므로 우리의 첫 번째 국가라고 설명되는 고조선을 문명화된 국가로 볼 수 없다고 단언하는 학자들이 있을 정도이다. 이와 같은 주장에는 설사 일부 청동기 문화가 중국보다 다소 앞섰다 하더라도 문자가 없는 한 진정한 문명세계로 볼 수 없다는 주장과도 연결된다.
그런데 근래 이런 주장을 무너뜨릴 수 있는 놀라운 주장을 저자는 책에서 말하고 있다. 한민족은 세계 최초의 문자인 녹도 문자와 가림토 문자를 발명했고, 녹도 문자와 가림토 문자는 아시아 전역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또한 중국이 자랑하는 한자 역시 녹도 문자에서 발전한 것으로 우리의 선조인 동이족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글은 단군이 만들었다
우리는 흔히 한글을 세종대왕이 창제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세종실록』에는 한글 이전에 다른 글자가 있었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세종 25년 개해 12년, 훈민정음창제 첫 발표문을 보면, “이달 상감께서 친히 스물여덟 자를 만드시니 그 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한 것이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또한 세종 28년, 9월 정인지가 쓴 해례 서에는 “…가로되 훈민정음이라 하시니, 상형하되 글자는 옛날의 전자(篆字)를 본떠서…”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은 당시 집현전을 대표하던 학자로서 한글창제를 반대했던 최만리 등이 올린 상소문에도 나온다.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근본 삼은 것으로 새로운 자가 아니라고 하신다면 곧 자형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더라도…”
저자는 한글창제 당시의 이러한 기록에서 한글 이전에 문자가 있었고 세종대왕은 한글을 재창조한 것임에 착안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글 이전의 문자를 『 환단고기 』와 『단기고사』를 통해 찾게 된다. 『 환단고기 』「단군세기」를 보면 단군3세 가륵임금 때인 B.C. 2181년에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게 하니 이것이 ‘가림토(加臨土)’이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단기고사』에는 단군조선 개국 초기에 만들어진 가림토 문자가 그 후 어떻게 발전하면서 문명의 역사를 열어갔는지 보여주고 있다.
가림토와 한글의 글자모양을 비교해보면 그 연관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서 저자는 가림토와 한글은 태극에서 파생된 문자이고 음양오행의 원리가 집약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저자는 한국, 일본, 인도, 몽고, 중국지역에 널리 퍼져있는 가림토를 비교하면서 단군조선이 통치하던 광대한 영토를 확인하게 된다.
일본의 신대문자는 가림토 문자의 모음 중 5자, 자음 27자 중 6자를 쓰고 있으며, 인도 남방 구자라트 주에서 쓰고 있는 문자는 자음에서는 상당수가 같고 모음은 10자가 같은 것을 밝히고 있다. 즉, 알타이어의 사용범위가 터키, 몽고, 티베트, 만주 퉁구스어, 한국어, 일본어 등으로 구분되는 것으로 볼 때 그 문자의 원형이 가림토 문자였음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한글과 한자의 뿌리
저자는 가림토 문자를 만들도록 명하신 제3대 가륵단군의 가림토 문자 창제배경에서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진서(眞書)가 있다 해도…” 라는 기록에 의문을 품고 다시 세계 최초의 문자인 녹도문자에 접근한다. 『 환단고기 』 「태백일사」 중 소도경전 본훈 제 5편의 기록에 보면 환웅천황(BCE 3898년)께서 “신지혁덕에게 명하여 녹도의 글로써 천부경을 기록케 하였다.” 라고 한 것을 보면 그 당시에 녹도란 문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태백일사」 <신시본기>를 보면 신지혁덕에게 명하여 문자를 만들게 하셨는데 신지가 사슴 발자국의 흔적을 보고 문자를 발명했기 때문에 ‘녹도문자’라고 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저자는 녹도문자는 배달국시대 이후 계속 사용해 온 것이 분명하며 단군조선 때까지 진서라는 이름으로 널리 쓰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문자가 어렵고 말이 통하지 않아 BCE 2181년 제3대 가륵 단군 때 하늘 소리글자인 가림토 문자를 새로이 창제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자는 동이족이 발명한 가림토 문자와 녹도 문자 등이 중국 대륙에서 널리 사용 발전해 온 것을 한(漢)나라가 자기의 글과 글자로 삼았다는 의미에서 한문(漢文) 또는 한자라고 하는 것이다. 설문해자 및 갑골문에 남아 있는 글자는 중국에서 가림토 문자와 녹도문자가 함께 사용되었다는 증거이고 『 환단고기 』 「태백일사」의 기록은 이 사실을 더욱 확실히 뒷받침하고 있다.
정리하면, 한문은 녹도 문자가 뿌리가 되어 탄생한 문자이며, 한글은 가림토 문자가 원형이 된 것이다. 한문은 세상 만물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뜻글자니 음이요, 한글은 하늘의 소리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글자니 양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장차 세계에서 배워갈 우리의 말과 글
한글과 한자 이전, 우리 민족은 세계 최초의 문자인 녹도 문자와 가림토 문자의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한민족은 신라시대(진덕왕 3년)이후로 자기 문자를 빼앗기고 한자만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음양의 조화가 완전히 깨져 문자체계가 무너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과 우리 것이 뒤죽박죽되면서 모화사상이 생겨났고 한국인의 가치관과 뿌리는 송두리째 뽑히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문화나 현상에 대해 중국에서 그 뿌리와 사상을 찾으려는 사람이 생겨났다.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찾는 것은 너무도 중차대한 일이다. 역사와 문화를 잃어버리면 미래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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