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센 여자’
저는 경남 마산이 고향인데 거기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마쳤습니다. 그 당시는 여자가 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중학교를 나온 사람도 별로 없었어요. 저는 개화되신 어머니 덕택에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고, 졸업 후엔 시청에서 근무를 했는데 중매가 엄청나게 들어오더라구요. 저희 어머니 말씀으로 37번 중매가 들어왔대요. 그리고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이 어머니 마음에 딱 들어서 저는 얼굴 세 번 보고 결혼을 했어요.
그런데 결혼한 지 채 2년이 되지 않았을 때, 남편이 감기몸살 증세로 병원에 갔더니 심장판막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입원한지 20일 째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사랑이 뭔지 조금 알아가려고 하던 무렵에 청천벼락처럼 남편은 제 곁을 떠났고 그때부터 저는 ‘팔자 센 여자’라는 딱지가 붙었어요. 우리 어머니는 제가 하도 안 되었는지 “차라리 니가 죽지” 그러시더라구요. 하지만 죽지도 못하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 뒤 공무원생활을 청산하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이랍시고 이것저것 많은 사업도 해봤고 돈도 벌어도 보고 잃어도 보고 수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 저의 삶 속에서 저에게 가장 큰 희망은 저의 친구이자 남편이자 제 보호자 역할까지도 하는 제 아들이었어요.
♣ 백혈병이라는 불치병으로 2년간 투병생활을 하고
99년도까지 그래도 저는 제가 불행하다 절망적이다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1999년 11월 21일, 또다시 엄청난 일이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감기인 줄 알고 병원에 갔더니 백혈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백혈병은 불치병이라 살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제가 죽는다고 했어요. 너무도 황당하고 억울하고 세상에 대한 미움, 자신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입원을 하고 머리 빡빡 깎고 병원생활을 2년 동안 하면서 수십 번 죽을 고비를 넘겼어요. 어머니, 친척들, 친구들, 그리고 우리 자식의 많은 기도 속에 지금은 골수이식도 끝냈습니다.
그때 병원에 있을 때 저희 어머니가 “이제 뭔가 좀 믿어야 되지 않겠냐. 하시더라구요. 우리 친정집은 가족이 모두 카톨릭 신앙을 합니다. 어머니가 저에게도 성당에 나가자고 하시 길래 그러자고 했죠. 그때부터 모자, 마스크 쓰고 성당에 다니면서 교리공부도 하고 세례도 받았습니다.
♣ 아들을 통해 도장에서 입문식을 올림
그러던 중에 아들 방 책꽂이에 학교 책이 아닌 다른 책들이 꽂히기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우주변화원리』, 『이것이 개벽이다』, 『증산도의 진리』. 제가 평생 보지 못한 책들을 밑줄 쫙~ 그어가면서 공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아들이 그렇게 열심히 밑줄 그으면서 공부하는 건 처음 봤거든요.
그래서 “이게 뭔데?” 하는 얘기를 시작으로, 그 뒤로 아들과 수없는 시간을 언쟁하고 싸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성당에 앉아있으면 아들의 말이 떠오르면서 상제님 진리의 뿌리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왜 남의 나라 신을 이렇게 믿고 앉아 있을까?’ 회의가 들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래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아들의 권유에 마지못해 7월 9일에 동대문도장에서 입문식을 올렸습니다. 그래도 처음엔 일요일이면 성당 나가고 평일 가끔씩 도장에 가곤 했습니다.
♣ 조상님의 말, “내가 도와줄게, 내가 도와줄게”
그러던 중 결정적으로 11월 4일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교육받는 거 책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태을주 수행을 참 좋아해요.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했어요. 한 번, 두 번, 세 번 하고나니까 한이 확 풀어져나가는 기분도 들고 머리가 가볍다는 기분도 들고, 백혈병치료 후 다리가 계속 아팠는데 다리가 안 아픈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 날도 수호사님과 아들이랑 포감님이랑 넷이서 태을주를 열심히 읽고 있는데 두 시간이 지났을까요? 눈을 감고 태을주를 읽고 있는데 앞에서 뭐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쳐다봤더니 웬 할아버지가 왔다 갔다 하시는 거예요. ‘도장에 할아버지가 안 계신데?’ 그리고 눈을 반쯤 뜨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를 탁 치는데 너무 아픈 거예요. 그래서 눈을 떴죠. 그런데 아무도 없었어요. 다시 눈을 감고 태을주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분이 옆에 오시더니 “내가 도와줄게, 내가 도와줄게” 딱 두 마디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제가 방황하고 있었거든요. 그 순간 ‘내가 지금까지 내 조상을 두고 남의 조상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남의 신을 찾고 있었구나. 1999년에 죽었어야 될 몸이 지금 살아있는 이유가 증산도의 참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였구나. 내가 이곳에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셨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소름이 쫙 끼치기 시작했습니다.
‘환상일까? 허상일까?’ 의문을 가지면서 그 자리에 쓰러져서 마냥 울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들도 없고 아무도 안계세요. 한 30분 읽었나? 창피하더라구요. 밖에 나갔더니 수호사님께서 “뭐 체험하셨습니까?” 하시 길래 그 내용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어요. 그때부터 아무런 걱정도 조바심도 없었어요. 날아가는 기분이었어요. 밤새도록 잠이 안 오는 거예요.
‘내가 정말 조상님을 본 걸까? 잠깐 꿈을 꾼 건가!’
♣ 20여 년 전 사별했던 남편이 눈앞에
그 다음 날, 들뜬 기분으로 도장에 가서 또 태을주 수행을 했어요. 아들을 비롯해서 몇 분과 태을주 수행을 했습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요? 바로 제 코앞에서 숨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리고 누군가가 제 손을 잡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눈을 뜰 수는 없었어요. 제 바로 코앞에서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저랑 똑같이 읽고 있는데 정말 기절할 뻔 했어요. 그런데 그 목소리가 엄청 귀에 익었어요.
그런데 하는 말이 “내가 사는 곳에도 이런 주문을 읽는 곳이 있는데 나도 그곳을 찾아가봐야겠다” 그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20년 전에 죽었던 사랑하는 그 남자의 목소리였어요. 목소리만 듣고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신명이 내 자리에 서서 읽는 걸까? 내가 잘못들은 건 아닐까?’ 그런 의문을 품다가 저는 태을주를 그만 읽으려고 했어요.
왜냐면, 저는 그동안 그 사람을 진짜 잊고 살았어요. 제사에 한 번 참석하지도 않았고, 사랑한다는 말도 못했고, 자기 때문에 팔자 센 여자로 낙인이 찍혀서 원망했던 남자였어요. 그래서 저는 그 남자가 싫었어요. 그래서 남편 이야기를 하면 저는 자리를 피해요.
그런데 그 사람이 20여년 만에 똑같은 목소리로 얘기를 하는데 증산도가 아니면 감히 어떻게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머리에서 전율을 느끼며 태을주를 그만 읽으려고 하는 순간,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우리 열 번만 더 하자!”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속으로 ‘그러지 뭐.’ 했죠. 자기가 열 번 세어줄 테니까 하래요.
“훔치훔치~.” 한 번 읽으면 “9번 남았어” 그리고 “8번, 7번, 6번~” 그렇게 말을 해주는 거예요. 끝나고 나니까 눈이 떠졌어요. 그런데 아무도 없어요. 저는 넋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주위 분 말로는 30분 정도 그냥 넋을 잃고 있더래요.
♣ 마음을 다 바쳐서 정말로 간절하게 태을주를 읽어보세요
증산도 성도 여러분들이라면 누구나 태을주 수행으로 한 번쯤은 이런 체험을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수행 할 때면 항상 정말로 하소연하듯이 정성을 다 해서 읽어요. 내 마음을 다 바쳐서 머리에서 발끝까지 진심에서 우러나오게 간절하게 읽다보면 뭔가 느낄 수 있고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축복받은 이 날에 조그마한 체험에 의해서 이 자리에 섰지만 여러분들은 더 많은 체험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후천에 가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바로 앞에서 대면할 수 있겠죠. 지금까지는 잊고 싶었던 사람이었지만, 제 손을 만졌던 남편의 따뜻한 손길을 느꼈으니 앞으로는 자꾸 만나려고 해요.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제 투병생활을 잠깐 얘기할게요.
어떤 병이 닥쳐와도 자기 마음만 확고히 자리 잡으면 이겨낼 수 있어요.
의술, 약은 20%고 자기 마음이 80%입니다. 저는 밥공기가 들어오면 물리쳐요. 먹기 싫으니까. 하지만 먹어야 산다는 일념으로 한 쪽에서는 토해내고 한 쪽에서는 밥을 먹고 그랬어요. 그런 투병 끝에 지금 이 자리에 있고,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업장에 가도 그냥 이야기를 해요. “증산상제님은 우리 참 하느님이시고 대우주를 다스리는 분인데 우리가 왜 남의 신을 믿습니까?”
남의 신을 믿어봐야 아무 의미가 없더라구요.
도장에 가서 딱 앉으면 어떤 느낌이든지 받아요. 태을주 수행을 10분, 20분에 끝낼 게 아니라 1시간, 2시간, 3시간, 4시간도 하세요. 저는 두 시간 세 시간, 울음이 복받치면 울면서도 읽어요. 간절히 하소연하듯이 읽어요. 그러면 안 아파요. 정말로 안 아파요.
지금 젊은 분들도 많은데 인생은 참 짧아요. 제가 죽지 않고 살았던 이유는 상제님의 진리 속에서 많은 일을 하고, 이 좋은 것을 나만 알게 아니라 좋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들을 만나면 처음엔 아무 말도 안 해요. 너무 감동받아서. 그리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 죽었던 사람을 만났어.”
인생은 그렇게 짧은 줄 알았는데 증산도를 만나면서 ‘아,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은 짧지만 육체는 흙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영혼은 영원하다’ 는 것을 느꼈어요.
저는 경남 마산이 고향인데 거기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마쳤습니다. 그 당시는 여자가 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중학교를 나온 사람도 별로 없었어요. 저는 개화되신 어머니 덕택에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고, 졸업 후엔 시청에서 근무를 했는데 중매가 엄청나게 들어오더라구요. 저희 어머니 말씀으로 37번 중매가 들어왔대요. 그리고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이 어머니 마음에 딱 들어서 저는 얼굴 세 번 보고 결혼을 했어요.
그런데 결혼한 지 채 2년이 되지 않았을 때, 남편이 감기몸살 증세로 병원에 갔더니 심장판막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입원한지 20일 째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사랑이 뭔지 조금 알아가려고 하던 무렵에 청천벼락처럼 남편은 제 곁을 떠났고 그때부터 저는 ‘팔자 센 여자’라는 딱지가 붙었어요. 우리 어머니는 제가 하도 안 되었는지 “차라리 니가 죽지” 그러시더라구요. 하지만 죽지도 못하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 뒤 공무원생활을 청산하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이랍시고 이것저것 많은 사업도 해봤고 돈도 벌어도 보고 잃어도 보고 수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 저의 삶 속에서 저에게 가장 큰 희망은 저의 친구이자 남편이자 제 보호자 역할까지도 하는 제 아들이었어요.
♣ 백혈병이라는 불치병으로 2년간 투병생활을 하고
99년도까지 그래도 저는 제가 불행하다 절망적이다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1999년 11월 21일, 또다시 엄청난 일이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감기인 줄 알고 병원에 갔더니 백혈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백혈병은 불치병이라 살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제가 죽는다고 했어요. 너무도 황당하고 억울하고 세상에 대한 미움, 자신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입원을 하고 머리 빡빡 깎고 병원생활을 2년 동안 하면서 수십 번 죽을 고비를 넘겼어요. 어머니, 친척들, 친구들, 그리고 우리 자식의 많은 기도 속에 지금은 골수이식도 끝냈습니다.
그때 병원에 있을 때 저희 어머니가 “이제 뭔가 좀 믿어야 되지 않겠냐. 하시더라구요. 우리 친정집은 가족이 모두 카톨릭 신앙을 합니다. 어머니가 저에게도 성당에 나가자고 하시 길래 그러자고 했죠. 그때부터 모자, 마스크 쓰고 성당에 다니면서 교리공부도 하고 세례도 받았습니다.
♣ 아들을 통해 도장에서 입문식을 올림
그러던 중에 아들 방 책꽂이에 학교 책이 아닌 다른 책들이 꽂히기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우주변화원리』, 『이것이 개벽이다』, 『증산도의 진리』. 제가 평생 보지 못한 책들을 밑줄 쫙~ 그어가면서 공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아들이 그렇게 열심히 밑줄 그으면서 공부하는 건 처음 봤거든요.
그래서 “이게 뭔데?” 하는 얘기를 시작으로, 그 뒤로 아들과 수없는 시간을 언쟁하고 싸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성당에 앉아있으면 아들의 말이 떠오르면서 상제님 진리의 뿌리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왜 남의 나라 신을 이렇게 믿고 앉아 있을까?’ 회의가 들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래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아들의 권유에 마지못해 7월 9일에 동대문도장에서 입문식을 올렸습니다. 그래도 처음엔 일요일이면 성당 나가고 평일 가끔씩 도장에 가곤 했습니다.
♣ 조상님의 말, “내가 도와줄게, 내가 도와줄게”
그러던 중 결정적으로 11월 4일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교육받는 거 책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태을주 수행을 참 좋아해요.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했어요. 한 번, 두 번, 세 번 하고나니까 한이 확 풀어져나가는 기분도 들고 머리가 가볍다는 기분도 들고, 백혈병치료 후 다리가 계속 아팠는데 다리가 안 아픈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 날도 수호사님과 아들이랑 포감님이랑 넷이서 태을주를 열심히 읽고 있는데 두 시간이 지났을까요? 눈을 감고 태을주를 읽고 있는데 앞에서 뭐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쳐다봤더니 웬 할아버지가 왔다 갔다 하시는 거예요. ‘도장에 할아버지가 안 계신데?’ 그리고 눈을 반쯤 뜨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를 탁 치는데 너무 아픈 거예요. 그래서 눈을 떴죠. 그런데 아무도 없었어요. 다시 눈을 감고 태을주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분이 옆에 오시더니 “내가 도와줄게, 내가 도와줄게” 딱 두 마디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
고외숙 성도와 아들 김진훈 성도가 함께 도전을 보며 공부하는 모습이 너무도 정겹다 |
그 당시만 해도 제가 방황하고 있었거든요. 그 순간 ‘내가 지금까지 내 조상을 두고 남의 조상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남의 신을 찾고 있었구나. 1999년에 죽었어야 될 몸이 지금 살아있는 이유가 증산도의 참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였구나. 내가 이곳에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셨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소름이 쫙 끼치기 시작했습니다.
‘환상일까? 허상일까?’ 의문을 가지면서 그 자리에 쓰러져서 마냥 울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들도 없고 아무도 안계세요. 한 30분 읽었나? 창피하더라구요. 밖에 나갔더니 수호사님께서 “뭐 체험하셨습니까?” 하시 길래 그 내용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어요. 그때부터 아무런 걱정도 조바심도 없었어요. 날아가는 기분이었어요. 밤새도록 잠이 안 오는 거예요.
‘내가 정말 조상님을 본 걸까? 잠깐 꿈을 꾼 건가!’
♣ 20여 년 전 사별했던 남편이 눈앞에
그 다음 날, 들뜬 기분으로 도장에 가서 또 태을주 수행을 했어요. 아들을 비롯해서 몇 분과 태을주 수행을 했습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요? 바로 제 코앞에서 숨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리고 누군가가 제 손을 잡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눈을 뜰 수는 없었어요. 제 바로 코앞에서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저랑 똑같이 읽고 있는데 정말 기절할 뻔 했어요. 그런데 그 목소리가 엄청 귀에 익었어요.
그런데 하는 말이 “내가 사는 곳에도 이런 주문을 읽는 곳이 있는데 나도 그곳을 찾아가봐야겠다” 그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20년 전에 죽었던 사랑하는 그 남자의 목소리였어요. 목소리만 듣고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신명이 내 자리에 서서 읽는 걸까? 내가 잘못들은 건 아닐까?’ 그런 의문을 품다가 저는 태을주를 그만 읽으려고 했어요.
왜냐면, 저는 그동안 그 사람을 진짜 잊고 살았어요. 제사에 한 번 참석하지도 않았고, 사랑한다는 말도 못했고, 자기 때문에 팔자 센 여자로 낙인이 찍혀서 원망했던 남자였어요. 그래서 저는 그 남자가 싫었어요. 그래서 남편 이야기를 하면 저는 자리를 피해요.
그런데 그 사람이 20여년 만에 똑같은 목소리로 얘기를 하는데 증산도가 아니면 감히 어떻게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머리에서 전율을 느끼며 태을주를 그만 읽으려고 하는 순간,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우리 열 번만 더 하자!”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속으로 ‘그러지 뭐.’ 했죠. 자기가 열 번 세어줄 테니까 하래요.
“훔치훔치~.” 한 번 읽으면 “9번 남았어” 그리고 “8번, 7번, 6번~” 그렇게 말을 해주는 거예요. 끝나고 나니까 눈이 떠졌어요. 그런데 아무도 없어요. 저는 넋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주위 분 말로는 30분 정도 그냥 넋을 잃고 있더래요.
|
증산도 성도 여러분들이라면 누구나 태을주 수행으로 한 번쯤은 이런 체험을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수행 할 때면 항상 정말로 하소연하듯이 정성을 다 해서 읽어요. 내 마음을 다 바쳐서 머리에서 발끝까지 진심에서 우러나오게 간절하게 읽다보면 뭔가 느낄 수 있고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축복받은 이 날에 조그마한 체험에 의해서 이 자리에 섰지만 여러분들은 더 많은 체험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후천에 가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바로 앞에서 대면할 수 있겠죠. 지금까지는 잊고 싶었던 사람이었지만, 제 손을 만졌던 남편의 따뜻한 손길을 느꼈으니 앞으로는 자꾸 만나려고 해요.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제 투병생활을 잠깐 얘기할게요.
어떤 병이 닥쳐와도 자기 마음만 확고히 자리 잡으면 이겨낼 수 있어요.
의술, 약은 20%고 자기 마음이 80%입니다. 저는 밥공기가 들어오면 물리쳐요. 먹기 싫으니까. 하지만 먹어야 산다는 일념으로 한 쪽에서는 토해내고 한 쪽에서는 밥을 먹고 그랬어요. 그런 투병 끝에 지금 이 자리에 있고,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업장에 가도 그냥 이야기를 해요. “증산상제님은 우리 참 하느님이시고 대우주를 다스리는 분인데 우리가 왜 남의 신을 믿습니까?”
남의 신을 믿어봐야 아무 의미가 없더라구요.
도장에 가서 딱 앉으면 어떤 느낌이든지 받아요. 태을주 수행을 10분, 20분에 끝낼 게 아니라 1시간, 2시간, 3시간, 4시간도 하세요. 저는 두 시간 세 시간, 울음이 복받치면 울면서도 읽어요. 간절히 하소연하듯이 읽어요. 그러면 안 아파요. 정말로 안 아파요.
지금 젊은 분들도 많은데 인생은 참 짧아요. 제가 죽지 않고 살았던 이유는 상제님의 진리 속에서 많은 일을 하고, 이 좋은 것을 나만 알게 아니라 좋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들을 만나면 처음엔 아무 말도 안 해요. 너무 감동받아서. 그리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 죽었던 사람을 만났어.”
인생은 그렇게 짧은 줄 알았는데 증산도를 만나면서 ‘아,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은 짧지만 육체는 흙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영혼은 영원하다’ 는 것을 느꼈어요.
출처 : 귀신과 영혼의 신비
글쓴이 : 곰선생 원글보기
메모 :
'명상과수행 > 명상,수행에대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을주 수행으로 돌아가신 아버님을 뵙다 (0) | 2014.06.16 |
---|---|
명상과 수행 (0) | 2014.06.16 |
[스크랩] 운장주 (0) | 2014.06.11 |
천연두에 좋은 태을주 (동의보감) (0) | 2014.06.11 |
에드가 케이시가 말하는 진언(mantra, 주문) (0) | 2014.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