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과 저승사이…더위는 없다, 눈물만 흐를뿐 | ||
[임종체험] “내가 죽기 전에 마지막 말을 남길 수 있게 돼서 너무 다행이에요. 내 장례식은 최대한 아름답게 해주세요. 나 아직 결혼식도 못 해봤잖아요. 내 꿈이 하얀 드레스 입은 예쁜 신부가 되는 거였거든요.” 임종 체험을 앞두고 김민경씨는 엄숙한 분위기에서 조용히 유언장을 써 내려갔다. 앞길이 창창한 민경씨가 오늘 죽는다든지 그런 것은 아니다. 푹푹 찌는 무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름만 들어도 오싹오싹 소름이 돋는 임종 체험에 도전한 것. 임종 체험은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면서 더위도 잊는 일석이조의 바캉스로 최근 인기를 얻고 있다. # 참회의 유언장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취업 준비에 정신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는 김민경(23·여·서강대 경제학과)·김명진(〃)씨는 지난달 26일 전북 익산시 임종체험관에서 자신의 죽음과 마주했다. 죽음에 직면하는 순간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고 했는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수다 떨기에 여념 없던 민경씨와 명진씨의 표정이 이내 굳어진다. 임종체험관은 지난해 11월 30일 첫 문을 연 뒤 4500명 정도가 다녀갔다. 칼로 물 베기 싸움을 하고 온 부부, 말썽꾸러기 중학생 아들과 함께 온 가족, 대안학교 학생들, 보험회사 영업사원들, 종교단체 회원까지 참가자의 면면이 다양하다. 임종체험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어야 한다. 상상 속의 죽음이 현실이 되는 순간. 두 학생은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고민수(38) 원장은 “우리는 직원 모두 영정사진을 명함에 새겨 다닌다”고 말했다. “언제 닥쳐오게 될지 모르는 죽음을 늘 생각하며 살자는 생각 때문”이라는 게 고 원장의 설명이다. 섬뜩한 이야기다. 하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게 결국 인간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영정사진을 찍은 뒤 강의실로 향했다. 강단에 선 고 원장은 “죽음이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곤 유언장 쓰는 시간을 가졌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유언장을 쓰기 시작한 민경씨와 명진씨. 20여분 정도 지나자 펜을 잡은 민경씨의 손끝이 조금씩 떨린다. 명진씨도 흐르는 눈물을 닦느라 정신없다. 유언장을 다 작성한 민경씨는 “영정사진을 찍을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막상 유언장을 쓰려고 하니 뭔가 숙연해지고 진짜 죽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명진씨는 “유언장을 쓰는 동안 부모님 속썩였던 게 생각나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고 원장은 “대부분 참가자가 처음에는 임종 체험을 장난처럼 생각하다가도 유언장을 쓰면서부터는 진지하게 죽음을 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 “다시 태어난 셈… 더 열심히 살아야겠죠”
“엄마 슬퍼하지 말고 잠시만 헤어져 있다는 생각으로 기다리고 계세요.”(김명진씨)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간다.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길…. 가로 80㎝ 세로 180㎝의 오동나무관은 젊은 여성이 들어가기에도 비좁을 정도. 그러나 관치고는 큰 편에 속한다고 한다. 고 원장은 “사람이 죽으면 염을 한 뒤 몸을 6개의 매듭으로 꽁꽁 묶어 넣기 때문에 실제 사용되는 관은 이보다 더 작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두 학생이 자신의 관에 들어가 몸을 눕히자 저승사자가 다가와 관 뚜껑을 덮는다. 이때부터가 입관 체험의 하이라이트. 뚜껑을 덮은 관에 ‘쾅 쾅 쾅’ 6개의 못을 친다. 그러곤 준비된 흙을 삽으로 퍼 관 위로 뿌린다. 두 학생에게 머리가 쭈뼛거릴 정도의 공포가 엄습했다. 관 안에서는 ‘헉’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관속에서 그렇게 10분 정도 머물러야 한다. 어둠 속에서 전율이 흐르고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의 순간순간이 영화 필름처럼 눈앞을 훑고 지나간다. 관에서 나온 민경씨와 명진씨는 혼이 빠진 듯한 표정이었다. 명진씨는 “단단히 마음 준비를 하고 들어갔는데 막상 관뚜껑이 닫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자 넋이 빠져나간 듯 멍한 기분이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못을 박는 소리에 심장이 멎을 뻔했다”고 관 속에서의 상황을 설명했다. 민경씨도 “관 위에 흙이 뿌려지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진짜 묻히는 듯한 기분이었다”고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공포영화나 귀신의 집처럼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공포가 아닌 죽음이라는 근본적인 공포를 마주했던 두 사람. 무섭지만 자신의 삶을 돌이켜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제 다시 태어난 셈이니 더 씩씩하게 열심히 살아야 겠죠?” 삶에 충실해지는 것. 임종 체험의 목적이다. 익산=글 박진우 dawnstar@, 사진 이종렬 기자 leejr@segy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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