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철학/기독교

철학적으로 예언이 가능한가?

곰선생=태화 2013. 6. 15. 19:50

철학적으로 예언이 가능한가?

철인 예언가

현대인은 노스트라다무스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 봤어도 그의 전생애를 관통하고 있는 진실된 영적 세계에 대해서는 너무도 많은 부분을 모르고 있다. 우리는 노스트라다무스를, 그와 동시대에 살았던 조선의 위대한 철인 예언가인 남사고 선생과 비교하면서, 동서의 정신세계는 한 길로 통해 있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비록 같은 시대를 지구의 반대편에서 살았지만 그들이 전하고 있는 신(神)의 음성은 동일한 소리였으며, 그들 영혼의 초점이 신의 숨결과 한 줄기 물결이 되어 흘렀을 때, 순결한 의식의 바다 위에 찬란하게 비쳤던 인류의 미래 모습은 비슷한 영상으로 떠올랐다. 이 두 철인 예언가가 남긴 인류문명의 비밀을 풀어 가노라면 동·서 정신세계의 대조적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동서양의 정신세계는 상대적이다. 서양의 사유는 단편적이며 분석적인 데 반해, 동양의 통찰력은 사상(事象)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혜안을 열어 준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전하고 있는 전 내용을 눈을 감고 그려 보라. 그는 현상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변화를 일으키는 힘의 정체와 원리에 대해서는 희미한 소식만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남사고는 변화의 거센 흐름을 만화경같이 종합적으로 전해 주면서, 이러한 충격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인간의 원한’과 ‘진리의 통일 문제’를 선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제1부에서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황금의 사투르누스와 레이포즈’, ‘1999년의 개벽시간대 문제’, ‘공포의 대왕의 신비’, 그리고 그의 예언시에 가장 많이 흐르고 있는 ‘7과 9의 수의 비밀’ 등이 해명될 것이며, 이러한 내용들은 남사고의 예언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될 것이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시는 신비철학의 미(美)적 감각이 짙게 흐르는 언어로 짜여져 있다. 이에 대해 노스트라다무스는 아들 세자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하기를, 온갖 변국이 일어나는 원인은 영원한 존재자에 의한 ‘하늘의 운동’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예언자는 ‘신의 비밀’을 인류의 지식과는 다른 수준에서 보게 된다고 하였다.
또한 우리는 여기에서 이러한 동서양 정신세계의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동방민족의 역철학체계인 ‘우주변화의 원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위대한 예언이 역사에 던지는 메시지

예언이란 미래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다. 우주와 인간이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남긴 숱한 발자취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모두 소멸되는 듯 보이지만, 기실 지금 이 한순간 속에 미래를 창조하는 엄청난 힘으로 잠재되어 있다. 다시 말해 과거와 미래는 현재에 동시에 수렴되어 있는 것이다.
눈을 비비고 아침에 일어나면 인간은 자신만이 간직하고 있는 미래의 꿈을 그리기 위해 길을 떠난다. 인간이란 미래의 꿈을 먹고사는 영물(靈物)이기에, 우리가 언젠가는 밟아가게 될 미지의 운로(運路)에 대한 탐색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미래의 소식을 전해주는 예언가에는
네 유형이 있다.
첫째, 자연의 변화원리[天理]를 대각한 철인(哲人) 예언가들.
둘째, 도통(道通)의 깊은 경지에서 미래를 그림같이 꿰뚫어 보는
도통군자와 성자들.
셋째, 종교적 계시를 받아 미래를 내다보는 종교인들.
넷째, 순수한 영적 감수성의 바탕 위에서 계시를 받아 미래사를 투시하는 영능력자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떠한 유형의 예언가이든지 간에 그들이 전해주고 있는 핵심 내용은 모두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인류의 미래 운명은 이미 대국적인 차원에서는 모두 예정되어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그 예정된 운명은 ‘우주에는 모종의 불가사의한 섭리’가 존재함을 암시한다.
비록 뚜렷하게 의식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인류는 우주가 변화하는 원리[天理]의 커다란 흐름을 타고 존재하며, 인간 자신이 창조한 문명 역시 우주 변화의 물똘(원리)을 따라서 발전해 간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동서양의 모든 예언자들은 영적인 환몽을 통해, 때로는 이치적 추론을 통해 오묘한 우주의 변화원리가 토해내는 시간의 파도 너머에 있는 미래의 모습을 밝혀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이 밝혀놓은 예언 내용은 예언가 자신의 영적 경지와 우주법도를 체득한 경계에 따라 실로 다양하다. 따라서 그들의 예언을 통해 미래를 바라보는 후세의 우리들도, 오직 시공을 관통하는 우주의 변화원리에 의거해서만 이런 예언들의 진실성 여부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
이에 나는, 인류의 구원과 미래의 운명에 대해 한소식 전하려 했던 동서양의 모든 성자와 철인, 과학자들의 고귀한 말씀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인류의 문화유산 중 우주의 변화법칙을 논리적으로 파헤칠 수 있는 유일한 철학체계인 ‘동양의 역철학(주역과 정역)’과 한민족 종교정신의 정수인 동학, 그리고 ‘증산도’를 바탕으로 인류의 미래에 얽힌 그 심원한 운명의 암호를 풀어보려 한다.
깨어진 영혼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시간을 초월하였던 고금의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고독한 삶을 살았다. 할 린제이가 말했듯이, 그들은 인류의 운명에 대한 대국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명을 띠고 태어난 하느님의 입과 같은 시간의 대변자였다. 한 생애를 살다가면서 그들 삶의 총결산으로 전해 준 인류 미래의 소식은, 상처 깊은 난세(亂世)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천지의 대변혁을 경고했지만, 종국적으로는 인류의 영원한 이상세계인 신천지의 낙원세계가 지상에 펼쳐지게 된다고 예고했다. 이는 천상과 지상이 동일한 우주법도에 의해 발전해 가다 마침내 신명과 인간이 동시에 구원되는 우주섭리 때문이다.

 

 


동서(東西)의 모든 종교의 성자들과 성철(聖哲)들이 전해 준 가장 중요한 구원의 핵심내용은, 새 시대의 도래에 따른 새 진리의 출현, 그리고 인류를 구원하는 민족의 정통문제로 모아지고 있다.
16세기는 많은 예언자들이 출현한 시대였다. 동서양을 대표하는 예언가인 격암 남사고(格庵 南師古, 1509∼1571)와 노스트라다무스(M. Nostradamus, 1503∼1566), 『토정비결』로 널리 알려진 토정 이지함(土亭 李之函, 1517∼1578) 선생, 『궁을가(弓乙歌)』 예언으로 유명한 정북창(鄭北窓, 1506∼1549) 선생이 거의 동시대를 살았다. 뿐만 아니라 『진인도통연계(眞人道通聯系)』를 써서 도통(道通)의 맥(脈)을 지도(地道)로 밝힌 명나라의 주장춘(朱長春) 선생도, 1583년에 진사(進士)가 되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역시 16세기를 같이 호흡한 사람이다. 또한 예언자로 보기는 힘드나 임진왜란을 예견하고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 선생도 16세기 조선의 인걸이었다.
1부에서 다룰 남사고와 노스트라다무스를 비교하자면, 노스트라다무스는 서양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예언하고 있음에 비해, 격암의 예언내용은 동양과 특히 한민족의 미래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노스트라다무스는 4차원 영계(靈界)에서의 계시와 비록 체계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상수철학(象數哲學)의 논리를 통해 인류 역사의 발전과정과 미래 인류가 파멸되어가는 모습을 소상히 묘사하고 있으며, 격암 남사고는 지상 최대의 변혁이 벌어지는 이유를 역(易)의 원리로 해명하고 대재앙의 참혹한 모습뿐만 아니라 그것이 오는 근본원인과 구원의 법방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