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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tation: Going Home the First Time

곰선생=태화 2013. 5. 23. 16:05

MEditation: Going Home the First Time

MEditation: Going Home the First Time

수행 : 처음 느낀 고향

                      

                            제프 님 체험담

  

Everyone knows the fantasy: meditating on an idyllic Eastern mountain peak with birds singing in rhythm to the soft ddak, ddak of a temple's wooden gong. Such images attracted me to Asia ten years ago, seeking an inner sense of purpose that my upbringing in Canada had not provided. But my first visit to an actual mountain temple outside of Seoul resulted in a monk offering me inner peace for $2000 US in tuition. From this I learned that a mountain peak can be simply a piece of the city mounted high. Luckily, I met a doctor of traditional Eastern medicine who offered to teach me meditation.

  
  

누구나 이런 환타지를 꿈꾼다. 부드럽게 '탁탁' 소리를 내는 목탁 리듬에 맞춰 새들이 지저귀는 동양의 한 소박한 산 정상에서 수행을 하는 그런 모습을. 이러한 모습에 끌려 나는 십 년 전 내가 자라난 캐나다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내 안에 있는 삶의 의미를 찾아 동양으로 오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서울 근교의 한 산사를 처음으로 방문하였을 때 그 곳의 한 스님은 나에게 내면의 평화를 가르쳐주는 대가로 이천 달러를 요구하였고, 이를 통해 나는 산 정상이란 단순히 높은 곳에 자리한 도시의 한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행히도, 나에게 수행을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한 어떤 한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I think that my expectations of meditation matched those of most Westerners, since we all learned what to expect from movies and television shows. (We suspect that this image is wrong, but we do not know exactly how.)
  
I knew that I would not really have to shave my head and wear a saffron robe, but I expected that my teacher would have me meditating in a hushed temple with woven mats and ancient statues. In later years, when I started instructing others in meditation, several of my Western students mentioned their fear that they would find meditation boring, a result that would have meant in their minds that they lacked some unique inner vision. I shared this concern and also feared that I would fail the esoteric art of meditation for petty reasons, such as failing to keep my mind from wandering or being unable to sit in one position for long periods of time.


   우리는 영화나 텔레비전을 통해 수행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수행에 대한 나의 기대는 대부분의 서양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보여 지는 이미지들이 실제와는 다를 것이라고 의심해 보지만, 정확히 뭐가 잘못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내가 정말로 머리를 밀고 법복을 입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적어도 고대의 불상이 있고 돗자리가 깔린 조용한 절에서 스승으로부터 수행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몇 년 후,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수행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어떤 서양인 제자들은 수행이 지루하게 느껴질까 걱정하곤 했는데 지루하다는 것은 곧 자신의 내적 통찰력이 부족하여 생겨나는 결과라고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의 고민을 공유하며 나 또한 잡념을 떨치지 못하거나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지 못한다는 사소한 이유들로 인해 수행이라는 심원한 예술을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였다. 


The reality of my first meditation session was much like the reality of many stereotyped experiences: half of my expectations were completely confounded, and the expectations that were met surprised me. Instead of a serene temple at dawn, my first meditation experience occurred in my teacher's apartment after a fine dinner of kalbi and crab. During dinner, my teacher's sister-in-law expressed her astonishment that I truly wanted to learn meditation; she was a modern Korean and viewed meditation as an outmoded and eccentric pastime. Her astonishment astonished me, for I had always presumed that all Asians revered meditation, and I suppose I even thought that monks were only the highest form of meditators and that all other Asians had at least some cultural experience of the art.


나의 첫 번째 수행 경험은 다른 많은 선입관을 가지고 시작했던 경험들과 비슷했다. 내가 기대한 바의 절반가량은 완전히 어긋났고, 기대와 일치했던 것들은 놀라웠다. 새벽녘의 고요한 절 대신에, 나의 첫 번째 수행은 저녁으로 맛있는 갈비와 게를 먹고 난 다음 원장님의 아파트에서 이루어졌다. 저녁을 먹는 동안 원장님의 처제는 내가 진심으로 수행을 배우고 싶어 하는 것에 놀라워했다. 현대적인 한국인인 그녀는  수행이란 구시대적이고 괴짜 같은 취미생활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놀라움이 오히려 나를 놀라게 했는데, 왜냐하면 나는 항상 모든 동양인들이 수행을 경외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수도승들은 단지 수행자의 최상의 형태일 뿐이며, 모든 아시아인들이 적어도 수행에 관한 문화적인 경험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After coffee, my teacher announced: "Let's meditate!" His apartment study had a computer station along one wall, his library against a second wall, and a meditation shrine against the third. His humble shrine, covered in white paper, had a simple silver water bowl, two white candles, and an incense brazier.  He and I sat on two cushions side by side, and he began the instructions.
 "Straighten your back. Breathe with your lower abdomen, like a baby does.  Babies have the most perfect, natural breathing rhythm, right from the stomach. Your legs do not have to be in any limb-twisting lotus position, just cross them comfortably."He gave me more practical advice on how to relax my muscles, where to place my hands, and how to hold my head. The instruction that surprised me most was: "Close your eyes, but not all the way." All the depictions of meditation I had seen had shown people with their eyes closed. But Doctor Shin explained, "If you close your eyes, your mind will wander too easily. Instead, leave your eyelids open a crack to keep you grounded in reality." 
 

  커피를 마시고 원장님이 “수행을 하자.”라고 말했다. 그의 아파트 서재는 벽 한 면을 따라 컴퓨터가 놓여 있었고 그 다음 면에는 책들이, 그 다음 면에는 수행 신단이 모셔져 있었다. 그의 작은 신단은 흰색 종이로 덮여 있었는데 소박한 은색 청수그릇과 두 개의 초, 향로가 있었다. 그와 나는 방석 두 개에 나란히 앉았고 그가 나에게 수행을 가르쳐주기 시작하였다. 
 “등을 똑바로 펴세요. 갓난아이들이 하는 것처럼 아랫배로 호흡하세요. 어린 아이의 배로 하는 호흡이 가장 완벽하고 자연스러운 리듬을 가진 호흡입니다. 결가부좌를 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다리를 편안하게 교차시켜 앉으세요.” 그는 어떻게 근육을 푸는지, 어디에 손을 두어야 할지, 어떻게 머리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보다 실질적인 가르침을 주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눈을 감으세요. 하지만 완전히 감으면 안 됩니다.” 내가 보고 들었던 수행에 관한 모든 설명들은 하나같이 눈을 완전히 감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원장님은 이렇게 설명했다. “만일 눈을 완전히 감으면 마음은 너무 쉽게 잡생각에 빠집니다. 대신에 작은 틈이 생기도록 눈꺼풀을 살짝 들면 당신은 현실에 머물게 됩니다.”
 

  "I thought that the point of meditation was to transcend reality." 
  "If you close your eyes," he explained, "your mind will drift off into your vast pool of memories and start compulsively thinking about everything. That's analytical meditation, an entirely different form." He smiled. "Besides, if you close your eyes, you'll fall asleep."


  “제 생각에 수행의 목적은 현실을 초월하는데 있다고 보는데요.” 
  그가 말했다. “만일 눈을 완전히 감는다면, 당신의 마음은 거대한 기억의 늪으로 빠질 것이고 수많은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할 겁니다. 그것은 분석적인 수행으로 완전히 다른 형식이지요.” 그가 웃었다. “게다가 눈을 완전히 감으면 졸음이 올 겁니다.”

We meditated in silence at first, listening to our own breathing. After a few minutes, Doctor Shin led me in chanting the mantra that he had taught me earlier in his clinic office: a fundamental mantra focused on healing. At twenty-three syllables, the Tae-eul Mantra seemed long and complicated to me,but short to him. For a Westerner, a short mantra would be "ohm,"but historically, Eastern mantras have stretched as long as ten thousand syllables,comprising the contents of entire tomes of learning.

 호흡에 귀 기울이며 묵상을 몇 분 한 다음, 원장님은 예전에 그의 병원에서 가르쳐 준 주문을 외우도록 했는데, 그것은 근원적인 주문으로 치료에 주안을 둔 것이었다. 스물 세 음절의 태을주는 나에게 길고 복잡하게 보였지만 그에게는 짧은 것이었다. 서양인들에게 짧은 주문은 아마도 “옴”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동양의 주문들 중에는 경전 전체의 내용을 담아 만개의 음절까지 늘어난 것도 있다.

 

After a time in which my mind focused on questions such as "Am I doing this properly" and "Am I chanting the mantra right," I noticed my left hand become cold as though an ice pack were hovering near it and my right hand tingled as though near a heat source. Then, my feet and legs became numb, and this numbness progressed up my legs and chest and arms, until all that remained was the sound of the mantra, my breathing, and my mind. A euphoria swelled within me, something that my mind did not recognize, yet could examine with eager curiosity. Eventually, my consciousness felt like a balloon tethered to a speeding car, just tenuously attached to reality.

 

‘내가 이걸 맞게 하고 있나, 내가 이 주문을 옳게 읽고 있나.’하는 생각에 마음을 두다가 얼마 후 나는 왼손이 마치 얼음 팩 주변에 있는 것처럼 차가워지고 오른손은 주변에 뜨거운 것이 있는 것처럼 따끔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 다음엔 발과 다리가 저려왔는데 이 저림은 차츰 발과 가슴, 팔까지 올라와 남아있는 것이라곤 주문소리와 호흡 그리고 내 마음밖에 없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내 마음이 인식하지 못한 그 어떤 것, 그러나 뜨거운 호기심으로 관찰할 수 있었던 환희의 감정이 내 안에서 점점 커져갔다. 마침내, 나의 의식은 마치 달리는 차에 매달려 있는 고무풍선 같았고 그러나 아주 희미하게나마 현실과 이어져 있었다.

 

The clapping of my teacher's hands, signaling the end of meditation, startled me. I would later learn that sometimes during meditation, when your joints are aching or your body is sick, minutes can seem like hours. But in that first meditation session, what felt like a handful of minutes spent chanting turned out to have been forty minutes.
   

원장님이 손뼉을 쳐 수행이 끝났음을 알렸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이후에 때때로 수행을 하면서 나는 관절이 아플 때나 혹은 몸이 아플 때는 몇 분이 마치 몇 시간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처음 수행에서는 40분의 주송 시간이 마치 짧은 몇 분으로만 느껴졌다.
  

Afterward, my emotional elevation evolved into a mind-set of peace and expansive awareness. In trying to describe this elevation to friends, I explained that it did not feel like the giddiness of alcohol or sex, but rather like the euphoria one feels upon beginning a journey home. In my subsequent years of meditation, I came to recognize this giddiness as a happy stage that meditators eventually learn to move beyond as they seek the state in which the mind stops speaking and starts listening. Through and beyond this state lies the potential to see the universe as it exists in truth. 
   

그 후, 나의 정서적인 향상은 평화로운 사고방식과 의식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러한 향상을 친구들에게 설명하려 했는데, 그것은 술이나 섹스를 통해 느끼는 황홀감이 아니라 오히려 막 고향 길에 오를 때 느끼는 행복감 같은 것이라 했다. 수년간 이어진 수행을 통해 나는 이러한 황홀감이 곧 수행자들이 '마음이 말하는 것을 멈추고 듣기 시작하는' 경계로 나아가면서 결국 넘어서는 행복한 단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단계를 통하고 넘어서는 것은 진실 속에 존재하는 우주를 볼 수 있는 잠재력에 달려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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