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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혼은 별과 별 사이로 윤회전생한다 1

곰선생=태화 2013. 4. 28. 16:48

우리 영혼은 별과 별 사이로 윤회전생한다 1

최고의 영매자 에드가 케이시가 말한 사후 세계

K. 폴 존슨 / 박태섭 (정신세계 2000년 3월호)


심령치료사, 대예언가 혹은 기적의 사나이로 불렸던 불가사의한 사람 에드가 케이시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인간의 비밀을 파헤친 '20세기 정신과학의 기적'으로 불린다. 이 글은 《그노시스(Gnosis)》지(紙) 1997년 겨울호에 실린 기사를 번역한 것이다.

에드가 케이시의 생애와 사상은 19세기 미국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던 여러 종교 신비주의 선각자들의 삶과 사상을 거의 모두 담고 있다. 참 신비한 일이다. 케이시는 몰몬교를 창도했던 조셉 스미스(Joseph Smith)처럼 유년 시절에 천사와 만나는 체험을 했고,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에게 영매(靈媒)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또, 케이시만이 보고 읽을 수 있었던 하늘의 문서들이 있었는데, 이 문서들을 읽어냄으로써 새로운 미래 역사관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던 것이다.

(역주: 케이시가 최면에 걸려 잠을 자듯 트랜스 상태에 들어가 이 하늘의 문서들을 읽고 말하는 것을 리딩(reading)이라고 하고, 그 리딩을 받아쓴 기록들 또한 리딩(readings)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어록”이라고 번역한다.)


켄터키주에 있던 케이시의 집은 19세기 초기 이래로 기독교 부흥회의 영향력이 컸던 지역에 있었다. 마치 몰몬교가 발생했던 뉴욕 주 북부가 몰몬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케이시의 생애에서 전환점은 자기 자신의 병을 고치는 능력을 발휘했던 때였다. 기적이었다. 그로부터 그는 남들을 치유하는 일에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매리 베이커 에디와 쌍벽을 이룬다.

매리 베이커 에디는 기독 과학(Christian Science) 협회를 설립했고 독자적으로 성공한 능력자였다.

케이시는 제 7일 예수 재림교(seventh-Day Adventism)의 여류 예언자 엘렌 화이트(Ellen G. White)처럼 성서 중심적인 세계관을 건설했다. 그 중심 축은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 요법” 사상이었다. 이것은 겉보기에는 과학적 탐구로 보이는 것이었으나, 실은 그가 트랜스(trance) 상태에서 받은 계시로 이루어진 작업이었다.

케이시는 서구 사람들의 의식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왔던 윤회 사상을 일깨웠던 사람이었다. 이 점에서 케이시보다 선구자로 꼽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람은 신지학(Theosophy)의 명인 마담 블라바츠키(H. P. Blavatsky)가 있었다. 블라바츠키가 설파했던 이야기들 중에 상당 부분이 케이시의 예언 어록과 상응하고 있다.

대 심령가 앤드류 잭슨 데이비스(Andrew Jackson Da-vis)처럼 케이시 역시 수없이 의료진단을 하고 치료 방법을 알려주었다. 모두 트랜스 상태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트랜스 상태에서 케이시가 얻은 어록


그러나 케이시가 여타 종교 지도자들과 다른 점이 두 가지 있다. 바로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케이시를 여타 종교인들과 같은 부류로 묶을 수가 없는 것이다.

케이시와 그의 추종자들이 설립했던 "연구계몽협회(the Association for Research and Enlightenment)”는 몰몬교나 기독 과학 협회, 제 7일 예수 재림교, 신지학회, 그리고 앤드류 잭슨 데이비스의 심령회(spiri-tualism)처럼 독자적인 종교적 색채를 표방하고 추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케이시의 연몽회(A.R.E)에서는 추종자들에게 각자의 종교적 믿음을 그대로 지키라고 격려했으며, 케이시의 "어록(readings)”에서 영적 지혜와 실용적으로 쓸모 있는 방법을 얻어 응용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케이시의 영향력은 당시에 뉴에이지 운동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당시 뉴에이지 조류(潮流)는 어떤 정통적 계보나 주된 세력이 없이 산만한 형편이었다. 사실, "채널(channel, 주파수대)”이나 “뉴 에이지”라는 말들이 제대로 의미를 가지고 쓰였던 것은 케이시의 어록이 최초였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매우 특이한 사실인데, 저 엄청난 분량의 케이시 어록은 49,000쪽이나 되는 것으로서, 그 어떤 영적 지도자들이 말한 내용보다도 많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시 자신은 자기가 트랜스 상태에서 무슨 말을 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케이시는 죽는 날까지 14,500 항목의 예언을 했으나, 그의 추종자 집단이나 인류를 위한 예언 따위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는 한 번 트랜스에 들어갈 때마다 한 가지의 메시지를 말했는데, 대개 개별적인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다.1) 그의 리딩 어록에 있는 이런 말들은 각개인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한 조언(助言)들이었던 만큼 각개인의 특수한 상황을 말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므로, 그런 그의 어록 속에서 일반 원리를 정리해 내는 일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케이시, 그는 누구였나?


에드가 케이시는 1877년 3월18일에 켄터키 주의 크리스찬 카운티에 있는 한 농장에서 태어났다. 양친의 이름은 레슬리 케이시와 캐리 케이시였다. 부친 레슬리는 그 지방의 평화를 지키는 치안 판사였으며, 소규모 지주였다. 레슬리는 여러 번 벤처 사업에 손을 댔다가 연거푸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모친 캐리는 에드가를 낳은 뒤로 네 명의 여동생들을 낳았는데, 올라, 사라, 애니, 그리고 매리였다. 케이시 집안 식구들은 기독교 신자들이었으며, 에드가 역시 기독교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13살이 되자 에드가의 일생을 암시하는 영적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에드가는 성서의 말씀에 너무나 몰두해서 강박관념을 가질 정도가 되었고, 이런 경향은 그의 일생토록 이어졌다. 13번째 생일날이 돌아올 무렵에 그는 이미 성서를 수십 번이나 정독한 상태였다. 1890년 5월, 집 근처의 숲에서 성서를 읽던 중에 에드가는 어떤 여성의 환영을 보았다. 그 여성은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로 에드가에게 말했다

"너의 기도가 하늘에 들렸단다. 네가 가장 소망하는 것이 뭔지 말해보렴.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들어주마."


에드가는 그녀의 등 뒤에 날개가 달려 있는 것을 희미하게 식별할 수 있었으므로, 천사가 나타난 것임을 즉각 깨달았다.

에드가는 대답했다

"저는 무엇보다도 남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어요. 특히 병든 아이들에게요."

천사는 곧 사라졌다. 에드가는 곧장 집으로 달려가서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을 어머니에게 그대로 알렸다. 그 다음날 에드가는 학교에서 넋이 나간 채 집중을 할 수 없었으므로 받아쓰기 시험을 제대로 치루지 못했다. 선생님은 삼촌 루션이었다. 삼촌은 아버지에게 어린 몽상가인 조카 에드가한테 강도 높은 학습을 시켜야 하겠다고 일렀다.
에드가의 부친은 에드가에게 낱말 철자들을 학습시키려고 했으나, 학습 결과가 신통치 않자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에드가를 두들겨패서 쓰러뜨려버렸다. 그때 에드가는 다시 천사가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잠을 좀 자거라. 그러면 우리가 도와줄게."

그래서 에드가는 낱말 사전을 베개처럼 베고 잠깐 낮잠을 잤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자 마치 사진을 찍은 듯이 사전을 통째로 줄줄 외울 수가 있었다. 부친은 에드가가 갑자기 사전을 통째로 외우자 너무나 놀랐다. 에드가의 학업 성적은 나날이 향상되기 시작했다. 책을 베고 잠을 자기만 하면 시험에 합격했던 것이다.

2년 뒤, 또 다른 능력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에드가가 야구공에 척추를 얻어맞는 사건이 일어났던 때였다. 그는 야구공에 부상한 뒤로 한동안 정신착란을 일으켰다. 그래서 부친은 에드가가 일찍 잠자리에 들도록 했다. 그는 잠이 들자 찜질 약을 제조하는 방법을 말하면서, 그 찜질 약을 바르면 아침이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님들은 황당해 했으나 다음날 아침에 에드가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나자 몹시 기뻐했다.

1892년부터 1901년까지 에드가에게 별다른 초자연적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그 지방의 한 사회인으로서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며 평범한 사람의 삶을 살았다. 그는 1897년에 거트루드 에반스와 약혼했으며, 1903년에 그녀와 결혼했다. 1900년, 그의 나이 23세 때에 에드가는 보험 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가정집을 방문하는 보험 설계사였다. 그러나 병에 걸려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직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1901년 3월31일, 그는 처음으로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일약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당시 홉킨스빌(Hopkinsville)의 회계사였던 앨 레인의 암시에 따라 최면상태로 들어갔다. 앨은 통신 교육으로 안마 요법을 터득했던 사람이었다. 에드가는 최면 상태에서 자신의 질병을 진단했다. 그 진단은 이러했다

"이 육체는 깨어 있는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하등 조직인 성대 근육의 일부가 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경 조직이 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리적 요인이 신체에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이 질환은 이러한 무의식 상태에서 계속 암시를 줘서 환부의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해줌으로써 치유될 수 있습니다."

레인은 이 말에 따라 암시를 주었다. 에드가의 부모도 역시 입회해서 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에드가의 목구멍에 혈액이 돌아 성대 부분이 빨갛게 되고 정상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암시를 주고난 뒤에 에드가의 의식이 깨어났다.

에드가는 십 개월간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목청이 제대로 돌아오자 치유의 초능력자로서 새 삶을 시작했다. 그는 사진사의 조수로 일하는 한편 레인의 환자들을 위해 초능력으로 "리딩”을 해 주었다. 1902년에는 저명한 지역 명사의 딸, 에이미 디트리히의 치료에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거트루드와 1903년에 결혼한 이후로 에드가 부부는 켄터키 주의 보울링 그린에 정착했고, 에드가는 사진사로 개업했다. 그들은 4년 뒤에 아들 휴즈 린 케이시를 낳았다. 1909년, 케이시는 알라바마로 갔다. 사진 일을 하러 간 것이었다. 아내와 아들은 켄터키에 남아 있었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홉킨스빌에 들렀다. 그때 그의 부친이 그를 웨슬리 케첨 박사에게 소개했다. 동종 요법 의사인 케첨 박사는 케이시의 초능력을 시험해보았다. 박사는 상당히 좋은 느낌을 받았고, 그 실험 결과를 뉴욕 타임스(1910년 10월 9일자) 신문에 소개했다.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 기사의 제목은 이러했다

"문맹자가 최면에 걸려 의사가 되다."

뉴욕 타임스의 기사는 전국적으로 여러 신문에 재차 소개되었다. 그때까지 간혹 쓰일 뿐이었던 그의 재능은 이제 부업이 아니라 전업이 되었다. 케이시는 홉킨스빌로 돌아와서 케첨 박사와 손을 잡고 초능력 진찰 전문 역할을 맡게 되었다. 계속된 성공이 보도되고 유명해지자 1911년에 하바드 대학교의 휴고 뮨스터버그 박사가 조사하러 왔다. 그 역시 케이시의 기묘한 능력에 대해 호의적인 보고서를 써 주었다.

1912년에 에드가는 케첨 박사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알라바마 주의 셀마로 이주했다. 사진사로 다시 개업할 참이었다. 이번에는 아내 거트루드와 아들 린도 함께 데리고 이주한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11년간을 살았다. 1918년에 둘째 아들 에드가 에반스 케이시가 태어났다. 그리고 2년 뒤, 에드가는 맏아들 휴즈 린을 데리고 데이빗 칸과 함께 텍사스로 갔다. "케이시 석유 회사”를 차리기 위해서였다. 칸은 켄터키 주에서 5년 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이었다. 케이시의 초능력이 석유 탐사 사업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2년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사업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이후로 케이시는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을 했다. 뉴욕, 피츠버그, 시카고, 덴버 등등의 도시에서 대중 앞에 나서 최면상태에서 예언하는 "리딩"을 시연해 보였던 것이다.

1920년대 중반은 케이시의 일생에서 가장 불안한 시절이었고, 또 가장 중요한 축을 이루는 시절이었다. 1923년 9월 10일, 셀마에서 케이시는 글래디스 데이비스를 비서로 고용했다. (역주:그녀는 케이시 사후에도 연몽회의 핵심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녀가 할 일은 케이시의 남은 생애 동안 모든 "리딩"을 꼼꼼히 기록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셀마에 정착해서 종생토록 "리딩”에 전념하려던 케이시의 계획은 아더 래머스가 조사차 찾아옴과 동시에 곧 중단되고 말았다.

1923년 후반은 케이시가 의료적 치유의 목적으로 "리딩"을 시작한 지 22년이 되던 해였다. 어쨌든 그 해는 그가 초능력 "리딩"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전체 경력의 절반에 다다른 시점이었다. 바로 그 해에 케이시는 그의 생애를 뒤바꿀 전환점에 도달한 것이었다. 그 전환점은 아더 래머스와 함께 찾아왔다. 래머스는 오하이오 주의 데이튼에서 큰 출판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아더 래머스는 강연회에 참석했고, 직접 "리딩”을 받았다.

래머스는 신지학자였다. 그는 케이시의 "리딩"이 치유적 목적으로 쓰일 것만은 아님을 곧 눈치챘다. 그의 관심은 백색 형제단(the Great White Brotherhood), 마담 블라바츠키, 아틀란티스와 레무리아(Lemuria) 등의 고대 문명들, 고대 신비주의 학파, 점성술 등에 이르기까지 폭이 넓었다. 케이시는 깨어 있는 의식 상태에서 래머스의 이야기를 듣고 몹시 당황했으나, 최면 상태에 들어가자 곧 래머스가 묻는 모든 질문에 대해서 술술 대답을 내놓았다.

그 이후로 22년간 에드가 케이시의 초능력은 오로지 한 가지 목적에 초점이 맞춰졌고, 그럼으로써 그의 초능력 또한 최고조에 달했다. 그렇게 해서 한 초능력자의 특수 지각 능력으로 본 것을 기록한 것으로서 인류 역사상 "가장 철저한" 기록이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물론 래머스의 질문들이 촉매가 되어 불러 일으켜준 덕택이었다. 래머스는 케이시의 "리딩"에 너무나 매료되었으므로, 셀마까지 케이시를 따라왔다. 그리고 비밀스러운 주제들에 관해서 수많은 "리딩"을 듣고 정리했다. 래머스는 케이시에게 데이튼으로 올 것을 종용했다. 점성술의 신비를 탐구해보자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해서 케이시는 점성술에 관해 "리딩"을 하게 되었는데, 대뜸 튀어나온 말은 래머스가 "전생에 수도승”이었다는 것이었다.

윤회 사상은 일상 의식 상태에서의 케이시에게 전혀 낯선 사상이었다. 그러나 그가 데이튼에 살 때 행했던 "리딩"에 잘 나와 있듯이 우주 진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케이시는 윤회 사상이 자신의 성서에 대한 믿음과 어긋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노심초사하며 걱정했다.



 

폴 존슨(K. Paul Johnson)은 신지학 역사에 관해 여러 권의 저술을 썼다. 그 중에는 "신비사상가 열전", "신비사상 입문" 등이 있다.

옮긴이
박태섭씨는 동국대에서 불교학, 서강대에서 종교학을 전공한 한학자로 전설적인 도학자 송화산, 송을산으로 이어지는 한학의 계보를 이어받았으며, "주역을 읽으면 미래가 보인다", "소설 기문둔갑"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