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세상의 모든 현상을 과학으로 재단하려는 접근에 대해 최 교수는 이처럼 비판적 시각을 견지했다. 머리와 마음을 닫음으로써 더 큰 진리를 놓칠 수 ?獵募? 생각 때문이다. 그는 근사 체험자들이 죽음을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아닌 평온과 축복으로 여긴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근사 체험자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후 겪는 극적 변화가 궁금합니다.
“근사 체험자들은 죽음을 경험한 후, 그때까지 탐착(貪着)해오던 물질적 풍요와 주변의 평가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자신들이 보고 온 세계에선 회계사 자격증도, 수억원의 돈도 전혀 필요없으니까요. 이들은 입을 모아 이승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배움과 사랑’이라 말합니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온 사람들은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돕고, 지혜와 지식을 끊임없이 쌓아나가는 일에 가장 큰 가치를 두게 됩니다.
근사 체험자가 죽음 뒤 세계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죠. 전체적인 삶을 통찰할 때 현세가 전부는 아니란 걸 알게 되니까요. 죽음은 내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가 아닌, 영체(psychic body)로 태어나는 것이라 믿게 됩니다. 또한 사후세계에서는 이승에서 경험할 수 없는 엄청난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렇기에 근사 체험자에게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완전히 사라질 수밖에 없어요.”
-영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결국 사후세계는 영체의 세계란 말씀입니까.
“힌두교의 베단차 철학에 따르면 인간은 3개의 몸을 갖고 있어요. 본래의 육체(gross body), 미묘체(subtle body), 그리고 두 몸의 근원이 되는 원인체(causal body)가 그것이죠. 사람이 죽으면 육체와 미묘체는 소멸되고, 영체인 원인체는 끝까지 존재합니다.
영적 영역을 믿는 학자들은 영체가 에너지의 파동으로 구성돼 있다고 설명합니다. 영체는 높은 영계(靈界)로 올라갈 수 있도록 진동이 빨라져 빛의 형태에 가까워진다는 주장이죠. 그런데 이렇게 높은 진동수를 가진 영체가 육체라는, 매우 느린 진동수를 가진 사람의 뇌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어려워 인간계와 영계가 소통하기 어렵다는 거지요. 영혼을 파동으로 파악하는 학자들의 설명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사후세계인 영계에는 종교에서 흔히 말하는 지옥과 천당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겠군요.
“아니요, 분명 영계에도 천당과 지옥이 존재할 겁니다. 비슷한 파동을 지닌 영혼끼리 모이게 되니까요. 맑고 깨끗한 영혼일수록 그 진동수가 높아 더 높은 곳을 향할 것이고, 범죄자나 악한 마음을 가진 영혼은 진동수가 낮아 낮은 지역에 머물 것입니다. 서로 배려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영혼이 모인 영계에선 천국과 같은 아름다운 삶이 지속되겠지만, 악한 마음을 지닌 영혼들의 영계는 지옥과 다름없는 세상이겠지요.”
과연 그의 말처럼 영적인 세계가 존재할까. 인간의 육체는 소멸돼도 영혼은 끝까지 존재할까. 문득 2년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실에서 본 12구의 주검이 떠올랐다. 영혼이 떠난 육체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결같이 표정 없는 얼굴을 지녔다. 시신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목격한 그때부터 기자는 육체에 그 사람만의 향기를 불어넣는 영혼의 존재를 믿게 됐다.
‘웰빙’과 ‘웰다잉’
최 교수는 세속적 가치에 천착하는 요즘 한국 사회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오랜 역사 동안 ‘영적(spiritual) 문화’를 간직해온 한국은 산업화란 암초를 만나 물질문명에 더욱 매달리게 됐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현세만이 가치 있다는 편향된 생각을 갖고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지 못했다.
반면 서양의 패러다임은 달라졌다. 물질문명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영적 세계로 관심이 옮겨간 것이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근사 체험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시작됐고, 죽음의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논의하는 여러 학회가 생겨났다. 최 교수는 “지금 한국 사회를 휩쓰는 웰빙(Well-being·참살이) 못지않게 ‘웰다잉(Well-dying)’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며 “주위 사람들과 품위 있게 이별하고, 자신의 생을 차분히 돌아보는 ‘죽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죽음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사후세계는 존재할까. 그 진위를 알기 위해선 아직 더 많은 시간과 연구가 필요하다. 그래도 생존을 위해 아등바등 달려온 인생 한가운데서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은 우리 삶을 보다 숭고하게 만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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