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31세) /
저는 어려서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녔는데, 어머님 병환이 길어지면서 고모님의 인도로 고등학교때 기독교로 전향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친구 한덕용 신도에게서 증산도 얘기를 듣고 도장에 방문한 후 2년여 간 어떤 결단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평생을 앓아온 아토피가 심해지자
저에게, 종교란 사람이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그저 마음 약한 사람들의 안식처와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깊었습니다. 절에 다니면서도 늘 그런 생각을 했었고, 교회에 다니면서도 같은 생각 때문에 사람들과 친화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교회 자체의 웅장함이나 함께 즐겨 부르던 곡조에 만족하면서, 때로는 어머니와 함께 착실히 나가기도 했고 때로는 피곤함이나 삶에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등한시한 때도 많았습니다.
종교란 사람의 필요에 의해 생긴 것이며, 그곳에 절대적인 무언가가 있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저의 지병 때문입니다. 제가 아토피라는 질병으로 근 30년을 고생하며 살아왔기에, 적어도 저에게는 종교가 현실적 고통을 극복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토피를 앓은 것은 갓난 아이 때부터였다고 합니다. 어릴 때도 늘 병원을 들락거렸으며, 중학교 때부터는 온몸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증세가 너무 심해져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거나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친구인 한덕용 신도는 언제나 저에게 변함없는 친구였습니다. 형님이 돌아가셨을 때에도 함께 곁에 있어 준 고마운 친구였습니다.
그런 친구가 난데없이 듣도 보도 못한 증산도라는 곳에 들어가서 친구들에게 개벽이야기를 할 때는 어떻게 말려야 하나 하는 생각에 친구들끼리 모여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세상 사는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 또한 당장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하고 집안 형편도 어려웠기에, 주위를 둘러보고 진지하게 얘기를 들을 만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증산도라는 세 글자에는“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라고 들리는 것이 아니라“사이비 단체가 또 생겼나 보구나”라는 생각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정성수행으로 아토피를 완치하다
그러던 와중에 2006년 여름, 극성스러운 아토피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심해질 때만 다니던 병원에서도 소견서를 써줄 테니 더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계속하였습니다. 한달 정도 병원에 다니면서 조직검사도 해 보았지만, 상태가 호전되지를 않았고 몸이 힘들어지니 오히려 주위를 둘러보게 되더군요.
한덕용 신도가 말하기를, 21일 정성수행을 제대로 하면 아토피도 완치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21일이면 병원에서 한달 버린 시간보다 짧다. 지금 상황에서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고 서울 목동도장에서 지금의 포감님을 만나 상담을 드린 후, 21일 정성수행을 시작했습니다.
정성수행을 하러 도장에 왔을 때는 처음 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왠지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약간 어두운 성전에서 신단을 밝히는 조명빛 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나 봅니다. 특히 상제님 어진과 태모님 진영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정성수행 기간 중에 병세는 더욱 심해져만 갔고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너무 괴로웠습니다. 온몸에 딱지가 앉았고 목에서는 쉴 새 없이 진물이 흘렀으며 눈과 귀까지도 많이 가려웠습니다. 그렇게 21일이 지나고, 차도를 보이는 듯했지만 여전히 상태는 안 좋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명현반응이 굉장히 심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제 몸속에 나쁜 것들이 너무도 많이 축적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49일 수행까지 마치고 나니 비로소 딱지들이 서서히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고, 저는 예전의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아갔습니다.
증산도 공부는 사람 살리는 공부
그 와중에 증산도에 대해서 새로운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 있지 않고서야 현대의학도 거의 손을 못 대는 아토피를 어떻게 속까지 다 끄집어내어 치료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의문을 풀어보기 위해 입문을 했습니다. 차분히 치성 참석도 하고 증산도 문화도 알아가면서 증산도대학교 교육에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입문 이후 느껴온 바를 종합해 볼 때, 한마디로 증산도는 참 어렵습니다(우주가 생긴 것이 어려워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에 입도는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잊고서 살아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증산도에는 분명 무엇인가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고, 그것을 좀더 알기 위해서는 입도를 해서 증산도 공부를 구체적으로 해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그 공부는 생명을 살리는 공부라니, 기왕이면 사람을 살리는 일꾼이 되어 뭔가 의미 있는 삶을 살아보고자 이렇게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더 익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벽기에 천지의 명을 받아 사람 살리는 일에 동참할 수 있다면,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보다도 더 큰 가문의 영광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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