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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해석

곰선생=태화 2013. 10. 19. 15:47

꿈의 해석


정신분석학에서 꿈은 나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어떤 상징입니다. 그래서 꿈이 은유하는 길을 따라 걸으며 기억속에 묻힌 개인의 역사를 재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뇌 과학에서는 꿈을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꿈이란 수면 중 뇌의 어떤 부분이 활발하게 작동한 결과물이기 때문이지요. 꿈의 신비로움과 꿈의 과학. 어떤해석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몸과 정신의 관계가 다르게 보입니다.

인류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이래로 꿈은 항상 매혹적인 존재였다. 사람들은 생생한 꿈속에서 사랑과 열정, 분노와 슬픔, 공포 따위의 감정을 분출했다.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꿈을 통해 무수히 많은 예술 작품을 쓰거나 그렸다. 그리고 종교 활동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여기 하나의 꿈을 소개한다.

혼자 마당을 걷고 있는 소녀가 있다. 마당 뒤편에 있는 어느 집에서는 창밖으로 은은한 불빛이 새어나온다.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웃는 소리가 마당까지 들린다. 소녀는 지금 아장아장 집 안의 불빛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갑자기 집 방향에서 공 하나가 또르르 굴러온다. 공을 본 소녀는 화가 난 듯, 발로 공을 세게 찬다. 공은 집 밖으로 멀리 날아갔다.

정신분석학계는 꿈을 해석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한국정신분석학회 회장인 유범희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의 말이다.

"비교적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전문직 여성이었어요. 직장 내 대인관계의 문제를 겪다가 상담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평탄하게 자기 인생을 되돌아봤어요. 그런데 조금씩 정보가 축적되면서 치료자가 판단하기에 이 사람에게 남동생과 관련한 히스테리가 있는 것을 알게 됐어요."

치료자가 판단하길, 공은 남동생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의식의 세계에서는 오누이의 사이가 좋을 수 있지만 상담자의 무의식에는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받은 관심을 뺏어간 남동생에 대한 뿌리 깊은 분노감과 경쟁심이 있다. 그 결과 직장에서도 남자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라고 꿈을 해석했다.

정신분석학에서 꿈은 해석 가능한 '자료'다. 꿈이 개인의 인생과 그 인생이 만든 무의식의 발현이라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을 따른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한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의식의 세계만이 아니라 그가 기억 너머로 묻은 무의식의 영역을 탐색할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정신분석학자들에게 꿈은 한 인간의 진실을 풀어가는 어떤 실마리다. 프로이트는 꿈을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라고 불렀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만들어지는 재료를 삶의 순간들이라고 가리킨다. 0세부터 쌓아온 기억이나 경험 중 폭발성이 강한 내용이 무의식의 세계에 갇히는데, 특히 의식이 감당하기 어렵거나 알려지기 힘든 내용인 경우가 많다.

한편 생물학적 이론을 기반으로 한 뇌과학계에서는 신화의 영역에 있던 꿈을 과학의 세계로 소환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앨런 홉슨 교수는 그의 책 <꿈>에서 "프로이트는 50%는 맞고 100%는 틀렸다"고 선언한다. 그는 꿈에서 나타나는 감정의 격앙 상태만 인정할 뿐이다.

정신분석학에서 꿈은
해석 가능한 자료다
기억이나 경험의 일부가
무의식의 세계에 갇히고
그것이 꿈으로 발현된다
반면 뇌과학계는 꿈을
감정과 관련된 뇌 일부의
활성화 현상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뇌 손상 입은 이들은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한다


'활성화-종합이론'(activation-synthesis)이라 부르는 그의 꿈 이론에 따르면, 꿈이란 잠을 자고 있는 뇌가 활성화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뇌로 드나드는 우연한 전기자극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꿈이다. 따라서 꿈에서 숨은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책 <그림으로 읽는 뇌과학의 모든 것>을 쓴 박문호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의 설명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꿈은 해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미 1900년대 들어 렘수면(REM: rapid eye movement. 빠른 안구 운동)이 발견되고 신경세포(뉴런)의 활성이 수면 중에도 계속 일어난다는 것이 밝혀졌어요. 자는 동안에도 뇌가 활동하고 있는 건데, 결국 뇌의 활동대로 보여지는 것이 꿈이죠."

뇌과학에서는 생생하고, 때론 뒤죽박죽이며, 감정이 분출되는 꿈의 특징을 뇌가 '선택적으로' 활성화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꿈을 꾸는 동안 감정이나 지각과 관련된 뇌의 회로는 활발히 움직이는 반면 기억을 하거나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부분을 담당하는 뇌의 회로인 전전두엽이 작동을 하지 않아서다. 정신분석학에서처럼 억압된 무의식적 소망이 비틀려 드러나기 때문이 아니라 신경생리학적 변화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 뇌과학에서 보는 꿈이다.

꿈을 꾸고 있는 뇌는 수면의 단계와도 관련이 있다. 수면의 단계는 크게 4단계로 나눈다. 수면은 1단계에서 4단계까지, 다시 4단계에서 1단계로 밤새 4~5번씩 반복한다. 숫자가 높을수록 깊게 잠이 든 단계이다. 잠들고 난 다음 90분이 지나면 렘수면 단계로 들어간다. 다른 단계에서도 꿈을 꾸지만, 렘수면 때 가장 선명한 꿈을 꾼다.

꿈을 꾸는 동안 이성적 사고가 가능하지 않은 것은 사고 기능을 하는 세로토닌과 노르아드레날린을 만드는 세포활동이 멈췄기 때문이다. 동시에 연상작용을 일으키는 아세틸콜린이 강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꿈속에서는 과하게 감정적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뇌를 흐르는 신경물질의 영향으로 꿈이 꿈다워진다.

특이한 점은 꿈을 꾸는 동안 뇌의 움직임은 활발해지는 대신에 몸은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이다. 일종의 몸의 휴식시간이다. 깨어 있는 동안은 보통 뇌간(뇌 전체에서 좌우 대뇌 반구와 소뇌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신경물질이 수의근(팔다리 같은 움직일 수 있는 근육)으로 가는데 렘수면 동안은 수의근으로 가는 신경물질의 전달이 막혀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수면 마비 증상은 꿈을 꾸다가 꿈에서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꿈에서 깨는, 이른바 '렘수면 행동장애'(RBD: REM sleep behaviour disorder)를 막아주는 구실을 한다. 이는 우리가 자다 깼을 때 종종 몸이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꿈이 뇌 활동의 결과물이라는 증거로 뇌 손상을 입은 사람들이 꿈을 꾸지 않는다는 점을 든다. 뇌졸중과 같은 뇌혈관 사고와 뇌전증 같은 뇌의 손상을 입은 사람은 꿈을 꾸지 않는다는 연구가 있다. 환자의 복합 감각 피질(표층을 이루는 회백질)이나 전두엽의 심부 백질(신경섬유의 집단이 있는 하얗게 보이는 뇌의 부분)이 손상됐을 경우 꿈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렘수면 중 선택적으로 활성화되는 조직들을 다쳤기 때문이다. 또 뇌졸중이 후두 피질의 시각 영역에서 일어날 경우 환자는 시각적 이미지를 상실한 꿈을 꾼다고 알려져 있다.

2009년 8월 앨런 홉슨 교수가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한 내용은 꿈이 뇌의 '연습' 활동이라는 주장이다. 사람들이 꿈에서 깨어난 뒤 곧 꿈의 내용을 잊어버리는 이유는 꿈이 하나의 연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접하는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뇌가 밤 동안 미리 아침에 마주칠 현실 적응 훈련을 한다는 의미다. 뇌는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꿈을 꾸게 하는 걸까?

꿈에 대한 다양한 이론은 아직 안갯속에 감춰져 있다. 뇌의 활동에 따라 마음의 영역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연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렘수면은 뇌에 있는 정보를 다시 정리하고, 필요 없는 기억을 삭제해 인지능력을 재생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즉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방식으로 기억을 순서대로 정리하는 능력을 회복하는 시간이 우리가 자는 시간이다. 꿈은 내가 그날그날 겪은 경험은 거의 드러내지 않는 반면, 정서적으로 두드러진 경험을 보여준다.

꿈은 뇌 속에 저장된 정보를 깨우기 위한 과정일까? 너무 많이 흡수한 현실의 정보를 거르고 삭제하는 과정일까? 기억과 꿈의 관계는 무엇일까? 장자의 호접몽과 같은 질문이다. 정신분석학과 뇌과학, 꿈에 대한 해석은 서로 다르지만 꿈에 대한 연구는 모두 나의 심리학적·신경생리학적 완성이라는 종착점을 향한다.

최우리 기자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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